사소한 시비 끝 사망사고 ‘날벼락’…7월 폭력사건 1월보다 50%↑

‘0.72(건구온도+습구온도)+40.6’

여름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으레 등장하는 불쾌지수 산출 공식이다. 기온과 습도가 높을수록 불쾌지수는 올라간다.

80 이상이면 대부분이, 75∼80 미만이면 절반가량이 불쾌감을 느낀다. 68∼75이면 적지 않은 이가 불쾌감을 나타내기 시작하고, 68 미만이면 대부분이 쾌적함을 느낀다.

요즘처럼 최고기온이 33도 안팎까지 올라가고, 습도 또한 높은 찜통 날씨가 연일 계속되면 불쾌지수도 함께 치솟는다.

신체 기능이 떨어지고 가뜩이나 만사가 귀찮은 상태에서 남과 살짝 스치기만 해도 의도하지 않은 충돌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더위에 알코올까지 더해지면 상승 작용을 일으켜 전혀 예상치 않은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시원하게 걸친 한 잔 술이 오히려 독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지난 15일 새벽 0시 20분께 충북 청주시 청원구 한 주택가.

A(39)씨는 술에 취해 길에 쓰러져 잠이 든 B(44)씨를 깨우다 화들짝 놀랐다.

잠에서 깬 B씨가 갑자기 화를 내며 주먹질을 해댔다.

고맙다는 인사는 못할망정 적반하장 식 태도에 덩달아 화가 치민 A씨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휘둘렀고, B씨는 그대로 나가떨어져 땅에 머리를 부딪쳤다.

B씨는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틀 뒤 결국 숨을 거뒀고, A씨는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취객을 도와주려고 했다가 쇠고랑을 차면서 순식간에 인생을 망친 신세가 됐다.

C(47)씨는 술에 취해 밖에서 잠들었다가 자신을 도와주던 경찰관을 폭행해 검거된 경우다.

C씨는 지난 21일 새벽 청주시 서원구 자신의 아파트 계단에서 경찰관을 발로 걷어차고 손으로 밀치는 등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 경찰관은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해 아파트 단지 인도에 누워 있던 C씨를 부축해 집에 데려다주려다 봉변을 당했다.

한밤중까지 좀처럼 식지 않는 더위에 잠시 쉬어가려다 그대로 곯아떨어지는 취객이 속출하면서 이런 사례는 끊이지 않는다. 직업도, 나이도 가리지 않는다.

지난달 14일 새벽에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한 아파트 단지 공원에서 잠을 자던 고교 교장이 경찰관 2명을 폭행하고 순찰차에서 난동을 부려 체포됐다.

이 교장은 지구대로 호송되면서도 순찰차 천장을 수십 차례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

회식 자리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다 112 신고를 하는 경찰관들도 있다.

광주광역시 북부경찰서 모 지구대 조모(52) 경위는 지난 6일 동료 최모(51) 경위에게 폭행당했다고 112상황실에 신고했다.

회식 자리에서 자신과 말다툼을 벌인 최 경위에게 맞았다는 내용이었다.

조 경위는 자신이 근무하는 지구대에서 피해자 조사를 받았지만, 경찰은 “당사자 간에 화해가 이뤄졌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며 최 경위를 훈방했다.

더위와 폭력 사건의 상관관계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국가통계포털(KOSIS)을 보면 2012년의 경우 전체 폭행 사건에서 여름철인 6∼8월 비중이 전체의 28%로 가장 높았다. 다음이 9∼11월(26%)과 3∼5월(25%)이며, 겨울철인 12∼2월(21%)이 가장 낮았다.

월별로도 7월에 발생한 폭력사건이 1만8천785건으로 가장 적은 1월의 1만2천188건보다 54.1%나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비슷한 내용을 뒷받침하는 해외 연구 결과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연구팀은 2013년 세계적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기온이 올라가면 폭력 범죄나 전쟁 같은 공격적 행동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연구팀은 인류역사의 제국 멸망과 최근의 전쟁, 미국 폭력 범죄 발생률 등에 관한 보고서 60건을 분석한 결과, 폭염과 가뭄 같은 기상이변이 있으면 폭력이 늘어나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의 경우 기온이 3도 올라갈 때마다 폭력 범죄 발생 가능성이 2∼4% 높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에서는 크라이스트처치 지역의 경우 평균기온이 10도인 겨울보다 25도인 여름에 폭력 범죄가 8% 더 많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건국대 충주병원 정신건강의학과 남범우 과장은 “인간의 공격적이고 폭력적 성향은 교육이나 이성의 힘으로 조절되는데, 불쾌지수가 올라가면 통제능력이 떨어져 사소한 자극에도 평소보다 훨씬 강한 반응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남 과장은 “치밀하게 계획한 범죄에는 똑같이 적용하기 힘들지만, 우발적 충돌에 따른 폭력사건이나 충동 범죄는 기온, 습도 같은 기후 요인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찰 관계자는 “여름철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시비가 붙어 지구대나 파출소에 오는 경우가 많다”며 “남의 감정을 상하지 않게 조심하고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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