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비와 벌에 홀린

한낮의 햇살 한 줌

커다란 하품이 불러온 바람

투명한 금빛 수정

오래도록 공들여 다듬은 검은 붓의 감촉

담장 위를 간질이는 핑크

허공을 응시하는 먼 옛날을 위해 남겨둔 물감

쓱쓱싹싹 세상의 모든 슬픔을 삼키다가

지루한 건 못 참아 하이힐을 벗어던진 여인처럼

하늘색 캔버스 위로 훌쩍 날아가는 말랑한 실루엣


<감상> 신발을 벗은 것처럼 나비 날개를 단 것처럼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 두둥실 뜬 것처럼 전깃줄엔 빗방울 몇 맺힌 것처럼 개울엔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자욱한 것처럼 공중에선 알 수 없는 새소리 울리는 것처럼 손가락을 벌리고 바람을 맞는 것처럼 그 바람이 내 날개인 것처럼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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