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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힐링처 십승지] 8. 영양군 산해리·방전리

천혜의 환경 속 부유하고 행복한 삶 꿈꾸는 미래의 승지(勝地)

김정모·정형기 기자 kjm@kyongbuk.com 등록일 2016년07월25일 18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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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운이 깃든 봉감 모전 오층 석탑 앞에 마을주민이 붉은 색 상의를 입고 서 있다.
현대인들은 행복을 추구한다. 그러나 좀처럼 행복을 찾기 힘들다. 행여나 힘들여 찾았다하더라도 잠시 잠깐. 오랫동안 유지하기 힘들다. 달나라 계수나무 아래 토끼 방아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신기루 같은 게 행복이 아닐까. 오히려 행복은 커녕 도시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직장인들로 병원을 찾는 이가 늘어나고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10명중 7명이 스트레스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 없고 행복한 삶을 공간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하는 게 좋은 땅, 즉 승지(勝地)개념이다. 경상북도 영양 땅은 가보면 누구나 살고 싶은 마음이 발심(發心)하기에 손색이 없다.

1960,70,80년대 한국의 농민들이 대거 도시로 이동했다. 이례적인 대이동이었다. 농촌 곳곳에서 조상 대대로 붙박이로 살던 이들이 너도나도 도회지로 떠났다. 자경지가 없어 소작으로 먹고사는데 너무나 팍팍해서 절망을 버리려고 이농했고, 돈벌이 하고 자녀 교육시키는데 농촌보다 도시가 더 낫다고 여긴 희망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역이동이 시작됐다. 산업화의 역군으로 활동하던 그들은 이제 쉬고 싶다. 고향을 그리워한다. 농업도 하기에 따라서는 수입이 괜찮은 시절이 와서 더욱 그렇다. 농촌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논 밭(전답)이라도 한 뙈기 마련하고, 살림집을 지을 집터라도 한 필지 구하려면 선택의 고민을 상당히 해야 한다. 이럴 때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곳이 영양이다. 새로운 귀농 귀촌지를 찾는 이들에겐 최적지라는게 영양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영양에도 이런 좋은 마을이 여러 군데 있다. 일월산과 반변천이 있는 곳곳에 괜찮은 마을이 어찌 없을 수 있으랴. 낙동강 상류 동쪽방면에서 가장 큰 지류인 반변천은 일월산에서 발원해 영양 골짜기를 굽이굽이 흐른다.

영양하면 일월산이고, 일월산하면 영양이다. 일월산(1219m)에 대해 김정호(金正浩)는 대동여지도(大東與地圖·1861)에서 영동 영서 영남 세 곳의 정기를 모은 곳이라고 일찌감치 얘기했다. 반변천의 또 다른 이름이 신한천(神漢川)이어서인지 반변천이 신기(神氣)가 큰 산천이라고나 할까. 일월산은 실제로 무속인들이 기를 받으러 모여드는 산이고, 최시형 동학교주가 동경대전 용담유사를 저술하기도 한 곳이니 빈말은 아니다.

뒤로는 아늑한 산이 있고 앞으로는 깨끗한 물이 사시사철 흐르는 수려하고 소득이 높은 대표적인 마을이 영양군 입암면 산해2리 봉감마을.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반변천 일대를 자신의 바깥 정원, 즉 외원(外苑)으로 삼은 국량이 큰 선비가 있다. 조선의 명유 우복 정경세의 제자인 석문 정영방(鄭榮邦, 1577∼1650) 진사다. 그는 야트막한 야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풍광 좋은 이곳 입암면 산해2리 봉감마을을 외원의 하나로 삼았다. 봉감마을에는 통일신라 초기의 석재를 사용한 ‘봉감모전5층석탑’(국보 제187호)이 우뚝 서 있어 주위 경관과 어울려 장관이다. 모전석탑 높이가 11.3m로 우람하다.

산해(山海)리라는 마을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산과 함께 바다 같은 시내가 있다. 반변천이 허리띠처럼 빙 둘러쳐져 있어 호수와 같은 큰 내를 이룬다. 산 속의 바다를 연상케 한다.

봉감 마을에 한 오백년 전에 송만공 이정희가 옥동서원(후에 봉람서원 개칭)을 세웠으나 철거됐다. 논둑에 주춧돌과 기왓장이 가끔 보인다. 20m 절벽 위에 남경대가 있다. 영등산의 굴 아래 절도 있었다고 한다. 봉감마을은 경관이 뛰어나지만 소득도 꽤 높다. 이 마을 사람들은 반변천에 메기와 잉어 붕어 누치 쏘가리 등을 잡아 매운탕을 끊여 먹기도 하는 여유로운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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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정원보다 앞서 조성한 영양군 입암면 연당리 서석지.

반변천 서쪽에는 마을 앞에 내를 끼고 수줍은 새색시처럼 숨어있는 듯한 입암면 연당리가 있다. 예천에 살았던 동래정씨이지만 서석지터인 연당리 일대 지세에 반해 터를 잡아 옮겨왔다. 지금도 후손들이 세거지로 이어오고 있다. 그가 지금의 한국 세태를 본다면, 자연과 인문은 잊은채 물질에 대한 끝없는 욕망에 찌든 현대인들을 힐난하지는 않을까 싶다. 서석지는 일본이 자랑하는 임천(林泉)정원보다 앞 서 1613년에 만든 조선식 정원으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입암면 연당리 서석지 앞내를 거슬러 2km가량 올라가 나오는 청기면 상청리에서 태어난 김도현은 안동 영덕 영해 일대 의병장으로 대한제국이 망하자 1914년 영해 대진 앞바다를 걸어 들어가 순국한 신화적 인물. 현 영양읍에서 918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나오는 길이 김도현 도해로(道海路)다. 김도현과 남자현의 귀로(歸路) 전야는 ‘플루타크 영웅전’에 수록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드라마틱하다. 에게해를 건너 소아시아에 상륙하여 페르시아군이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는 강을 건너 돌진한 이가 총사령관 알렉산더. 생사를 초월한 알렉산더의 용맹에 놀란 전 병사는 강을 건너 페르시아군과 붙은 1차 전쟁에서 승기를 잡았다. 이런 진정한 영웅의 모습이 한국에도 적지 않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역사적인 빛을 발휘하진 못했을 것이다.

영양군 입암면 방전리(안마을과 갯마을)도 사람 살기 좋은 마을로 손꼽힌다. 사과와 수박으로 소득을 올리고 있다. 입암면 방전리는 65호가 사는 마을. 호당 생산량이 평균 1억원 정도다. 수박 15억원어치, 사과 20억원 어치, 채소 10억 어치, 기타 벼, 고추 등 10억원어치를 생산하고 있다. 이 마을 농부는 웬만한 도시 근로자 연봉보다 못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도시근로자는 50대에 대부분 직장에서 쫓겨날 형편. 천혜의 환경 속에 사니 정말 일석이조다. kbs대구방송국 ‘6시 내고향’ 등 방송에 수 차례 소개됐다. 귀농해서 수박을 재배하는 장승창(71세)는 안동에서 개인사업을 하다 접고 수비면에서 2년 농사를 짓다가 이 마을에 입향한지 6년째다.

놀랍게도 이 마을엔 농부가 장학금도 낸다. 김기열 방전리장과 사과 농사를 하는 김재일씨는 마을 뒷산 이름을 딴 ‘왕재산 장학회’가 있다고 소개했다. 이 마을 출신 고등학교(20만원) 대학생(40만원)에게 입학금을 대준다는 것.

입암면 방전리에서 반변천은 석보면에서 흘러오는 화매천의 물을 받는다. 방전리 안마을 앞에는 흐르는 시냇물(화매천)을 따라 동쪽으로 2km정도 가면 석보면사무소 북쪽 언덕에 두들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삼척동자도 아는 현대문학의 거봉 이문열의 조상인 17세기 석계 이시명이 터를 잡았다. 지금도 재령이씨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 두들마을은 1616년 참봉(종9품) 이시명과 결혼한 ‘정부인 장씨’의 시집이다. 정부인 장계향(1598~1680)은 사후에 아들(이현일)이 정2품에 오르면서 정부인(貞夫人)에 추증되었던 것. 요리 방법을 순한글로 기록한 ‘음식디미방’을 남겼다.

반변천을 젖줄로 한 영양은 환경이 최우선 가치로 여겨지는 미래에 각광받는 땅이 될 수 있다. 영양은 또 아이들도 나물 이름을 척척 알아맞히는 예로부터 몸에 좋은 산나물의 고장이다. 5월 중순 영양시장 일원에서 열리는 산나물축제. 한양 평양 밀양 함양 산양처럼 영양은 햇볕이 잘 드는 고을이나 마을 이름에 붙는 ‘양(陽)’의 고을이다. 양의 고을치고 농산물이 좋지 않은 곳이 없다는 것이다.

힐링을 위해 걷기가 대세다. 주변 영양 청송 봉화 영월 4개 군을 잇는 170km ‘외씨버선길’이 조성돼 있어 이 지역은 힐링코스로도 더 없이 좋다.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정형기 기자 jeonghk@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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