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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시인
‘살가운 한민족이 다문화 감수성은 낮다고 하네요. 손길을 잃은 그네들 보면 그렇지 않나요. (중략) 웃음의 성정만 가진 백치 아다다 닮아 잔정이 가네요. 해서 드라마 주인공처럼 말해요. 걱정 마 내가 책임질게. 녀석은 고갤 갸우뚱하며 꼬리로 수긍의 몸짓을 표해요. 우주를 주고받노라면 저 멀리 뭇별이 반짝이죠.’ (졸작 ‘애견’ 부문)

셰익스피어의 희극 ‘한여름 밤의 꿈’엔 다음과 같은 대사가 나온다. 다른 여자를 짝사랑하는 남자에게 고백하는 처녀의 넋두리. ‘저는 그대의 애완견 스파니엘과 다름없어, 그대가 저를 때릴수록 더욱 그대를 따를 거예요.’ 두 연인의 심중도 모른 채 촐랑댔을 강아지의 귀여움이 애살맞다.

중국 청나라 융성기를 이끈 옹정제는 애완견을 끔찍이 아꼈다. 북경의 겨울은 벼루의 물이 얼 정도로 매서웠는데, 그는 개들의 월동에 관심을 기울였다. 늦가을 무렵 태감(환관)에게 명해 모피로 된 방한모와 방한복을 만들게 하고, 그 디자인을 비롯한 진행 상황을 직접 챙겼다고 한다.

황제의 애견 총애라니 의외다. 당시 상류사회엔 애완동물이 성행했는가 싶다. 영웅 조조와 명의 화타의 고향인 안휘성 박주박물관의 유물도 그랬다. 파르스름한 옥돌로 새긴 개 조각품은 혁대 문양의 장식이 고급스러웠다.

나는 푸들을 키운다. 아니 가족처럼 데리고 산다. 병아릴 사랑하던 딸애가 자신의 인생을 가지면서 졸지에 떠맡았다

녀석은 건강보험증 비슷한 신분증을 가졌다. 충무로 애견 숍에 진열된 형제 중 가장 잘생겼다 하여 ‘미남이’라 불렀다. 가게 주인이 적은 수첩엔 생년월일 2010.04.11, 성별 Male, 색 Brown, 종류 애프리 푸들, 그리고 공란으로 비워둔 혈액형이 전부. 개도 혈형이 있는지 모르겠다.

개만큼 친근한 동물이 있을까. 팍팍한 일상을 격려하듯 온몸으로 표현된 오체투지는 감동의 도가니 그대로다.

세상엔 세 타입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애견을 대하는 심성을 보면서 터득한 나름의 단상. 아예 거부감을 가지고 짜증을 내듯이 적대시하는 부류가 있고, 관심 없다는 듯 외면하며 지나치는 이들이 대다수다.

한데 가끔은 인간미 그득한 행인을 조우한다. 일부러 다가와선 이름이 뭐야, 몇 살이냐, 정성껏 쓰다듬고 인사를 나눈다. 그런 이를 보면 사교성이 와 닿는다. 사람이 아닌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접하면 천성이 느껴진다. 생판 타인에게 베푸는 무재칠시 같은.

장담컨대 공자는 다문화 감수성이 풍부한 위인임에 틀림없다. 정나라를 방문한 공자는 제자들과 길이 어긋났다. 스승을 찾아다니는 자공에게 어떤 사람이 공자의 모습을 설명했다. 초췌한 생김새가 상갓집 개 같더라고.

이를 전해 들은 공자는 “그 말이 맞다”고 웃었다. 열린 사고와 여유 넘치는 유머가 아니면 쉽지 않은 응대.

홀로 사는 인구가 늘면서 반려동물은 꾸준히 증가하고, 유기견 또한 연간 10만 마리가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누구든 애완견을 갖기 전에 거듭 숙고하기를 권한다. 돈과 정성, 두 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똥을 감내하는 희생은 기본.

‘너는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는 거야.’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 나오는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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