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한.jpg
▲ 김종한 수필가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팔순 중반인 노모(老母)는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거리가 있다고 항상 이야기한다. 첨단세상인 요즈음도 주위를 돌아보거나 드라마를 보면 걱정거리나 고민거리를 생활환경이나 여건이 비슷한 또래의 친구나 직장동료에게 토로하여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조언도 들으며 해법을 찾아가는 모습을 종종 본다.

생각하는 인간이기에 독불장군이 없고 서로가 더불어 공생(共生)과 상생(相生)을 하며 살아간다.

어느 지인이 한 말이 생각난다. 몸이 아파 병원 신세를 졌는데 처음 며칠은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꿀벌 들락날락하듯 하고 직장동료와 친목과 일에 얽힌 사람들도 다녀갔으나 한 달이 지나고 석 달이 되자 가족 외에는 아무도 찾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때야 계산된 야박한 속세에 자신이 가식과 허풍으로 실속 없이 살아온 삶이 후회되더라고 했다.

가끔 직장이나 친구 또래의 계추나 모임에 회포를 풀 때가 있다. 음식과 술잔을 나누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면 누구 아들이 취직했고, 자녀 돌잔치에 반지를 몇 개 받았다는 좋은 일이 있는가 하면 누구는 교통사고를 냈는데 합의가 안 돼 고민하고, 누구 어른은 암이 걸려 걱정이며 용한 비법이나 처방은 없는지 궂은일들도 늘어놓아 금세 토론의 장이 되고 인생의 체험장으로 서로 기뻐하고 위로도 하고 조언도 하면서 우정도 다진다.

사람마다 가정마다 생김새나 삶의 방식도 천태만상이다. 총론으로 보면 같거나 비슷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시시각각이다. 소득의 차이나 직업도 다양하고 환경은 달라도 자세히 들어다보면 자랑거리, 경사스러운 일이 있는가 하면, 고민거리, 고통스러운 일인 짐 덩어리도 잘사나, 못사나, 한국에 사나, 아프리카에 사나, 누구나 다 있어 이를 순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의 현실이다.

병원이나 약국에 가면 ‘돈을 잃으면 적게 잃는 것이고 친구를 잃으면 많이 잃는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다’는 글귀를 가끔 보듯이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소중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현실은 다르다. 바늘구멍을 뚫고 들어간 신의 직장인 공무원도 연봉 3천만 원도 안 되는 아등바등한 생존경쟁에 살아 버티려면 당장 먹고살 돈도 있어야 하고, 속마음까지 기탄없이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한둘의 친구나 동료도 중요하다. 세월이 갈수록 혼자 살기도 빠듯하여 맨몸뚱이만 달랑 건강하면 뭐하나 먹고살 돈도, 외로움을 달래줄 친구도 있어야 사는 세상이니 그렇다.

앞만 몰두하며 쳐다보고 달리다 보면 갖는 것도 있지만, 옆과 뒤의 소중한 다른 여러 가지를 못 보고 지나쳐 잃어버리는 것도 있다. 앞·옆·뒤까지 챙기는 건강도, 친구도, 돈도 가지는 ‘더불어 사는 인생’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 힘든 희생과 봉사도 따르며 항상 사랑과 감사의 마음도 가져야 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