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에서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대목인 기이편 고조선 조(條)를 읽고 논해 보고자 한다. 일연은 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를 시작하면서 고조선이란 조항이 두고 있는데, “위서(魏書)에 말하기를 지금부터 2천 년 전에 단군왕검이 있었는데, 아사달에 도읍하여 나라를 열었는데, 국호를 조선이라 했는데, 요임금과 같은 때였다”라 명확한 어조로 단군조선의 개국을 천명, 우리 민족역사의 첫 순간을 밝힌다. 이어서 이를 보충설명하기 위하여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신화를 소개하였다. 즉, 환인의 아들 환웅이 풍백·운사 등 무리 3천명을 거느리고 삼위태백(三危太伯)에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고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얻었는데, 이 단군이 1908년간 나라를 다스리다가 산신이 되어 숨었다는 이야기다. 단국의 개국은 요임금 50년이라 하고 단군이 나라를 경영한 지 1,500년이 되는 해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조선후(朝鮮侯)에 봉하자 잠시 동쪽 장당경으로 물러났다가 다시 아사달로 돌아왔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의 고조선 기록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중국과 대등한 역사로 고양시키는 문자로서 많은 사람들의 찬사도 받았지만,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는 신화를 담고 있어 민족의 역사를 처음부터 신화로 만든 아쉬움도 남기고 있다. 필자는 일연의 단군 기록에서 몇 가지 유의할 점과 민족사란 좌표설정에 기여하는 몇 가지 의미를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서 웅녀와 혼인하여 단군을 낳았고 단군이 조선이란 나라를 열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이 아주 먼 어느 곳에서 이주한 환웅족과 태백산 부근에 살던 곰 토템의 원주민이 결합하여 단군왕검을 중심으로 새 나라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환웅족의 유래와 태백산 주위의 원주민의 토템사상은 앞으로 더욱 깊은 연구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둘째, 환웅이 내려왔다는 삼위태백이 어디냐는 문제다. 태백산은 통산 백두산으로 비정하는데, 삼위산은 놀랍게도 중국 감숙성(甘肅省) 돈황현(敦煌縣)에 있는 산이다. 이 두 산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어떻게 그 간극을 메우느냐 하는 것은 앞으로의 숙제다. 그런데 태백산을 백두산으로 보려면 과연 거기에 나라를 세울만한 도읍터가 있었는지 인문지리적인 탐구도 필요하다.

셋째, 단군건국이 신화라는 것은 고기에 적힌 웅녀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사실과 웅녀이야기를 일연선사가 실었기 때문이다. 고기의 기록은 분명 그러하나, 일연도 고조선을 서술하면서 위서부터 인용하고 고기(古記)는 보충적으로 언급했다. 그런데 위서의 기록은 분명 정사(正史)의 서술체로 되어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곰이 사람이 된 이야기에 집착하였다. 일연이 기이편 서두에서 말하였듯이 나라를 일으킨 신성과 영걸은 대개 신비한 설화가 따라붙는다. 그러므로 고기(古記)보다는 위서의 기록을 근거로 고조선을 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전하는 위서 두 종류(서진 진수의 삼국지 위서와 북제 위수의 위서) 모두에 단군에 관한 기록이 없다. 그러나 일연의 시대에 있었던 기록이 빠질 수도 있고 위서라는 역사서가 무려 10종이나 있었으므로 일연선사가 단군의 기록을 읽은 위서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다음 호에 계속)
 

윤용섭 삼국유사목판사업본부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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