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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시로 더위를 쫓다

하재영 시인 등록일 2016년08월01일 18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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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재영 시인
더운 주말 오후, 시집 ‘청록집’을 들고 경주 건천 목월 생가에 갔다가 그곳에서 만난 식물 이름을 매칸없이 적어보았다.

‘백일홍, 박, 메밀, 여주, 풍선덩쿨, 천인국(루드베키아), 석죽, 코스모스, 금송화, 분꽃, 개망초, 채송화, 비비추, 옥잠화, 천사의 나팔, 해바라기, 나팔꽃, 금잔화, 가죽나무, 참죽나무 ….’

더위에 풀죽은 식물들의 이름을 적어보면서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세 시인이 엮은 ‘청록집’을 넘겼다. 목월 시인의 ‘박꽃’이란 시가 눈에 띄었다.

‘흰 옷자락 아슴아슴/사라지는 저녁답/썩은 초가지붕에/하얗게 일어서/가난한 살림살이/자근자근 속삭이며/박꽃 아가씨야/박꽃 아가씨야/짧은 저녁답을/말없이 울자’

‘박꽃’이란 시를 읽으며 진짜 목월 생가에 어울렸을 오래전 목월 생가를 상상했다. 그러면서 목월 생가 마당에 활짝 핀 백일홍이 있었다면 ‘백일홍’이란 시도 쓰지 않았을까 떠올렸다.

박꽃은 우리 생활에 활용할 수 있는 ‘박’이란 열매를 맺지만, 백일홍은 그냥 씨앗으로 결실을 맺는다.

박이든 백일홍이든 모든 꽃은 곱다. 백일홍처럼 색상이 화려한 꽃이 있는가 하면 인용한 목월의 시처럼 가난한 살림살이 자근자근 속삭이는 수수한 박꽃도 있다. 꽃들은 그냥 아름답고, 조금 더 들여다보면 하늘에 쏘아 올린 폭죽을 바라보는 일처럼 감탄사를 쏟아놓게 하며, 때론 아이들의 순한 눈망울을 마주 보고 있는 것처럼 마음을 차분하게 해준다. 그렇기에 여름꽃은 송이송이 다양한 색깔의 부채질로 더위를 씻어준다.

백일홍을 비롯한 대부분 꽃은 식용이 아니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활짝 핀 꽃들의 손길에 발길을 멈추었던 적이 있다. 꽃밭은 상추, 파, 배추를 심는 텃밭과 성격이 다르다. 집안 빈터에 관상용 꽃씨를 심으면 꽃밭이 되고, 식용식물을 심으면 텃밭이 된다. 장미가 최고라느니 꽃의 아름다움을 서열로 매긴다는 일 역시 인간의 작위적 오만일 뿐이다. 인간의 존재처럼 꽃은 서로 색깔과 향기가 다르기에 가치가 있는 것이다.

꽃을 본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꽃을 가꾸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종종 꽃을 들여다보며 꽃이야말로 한 편의 시(詩)란 생각에 빠진다. 평범한 토양에서 끌어올린 양분으로 다양한 색깔의 꽃잎과 꽃술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시 창작과정과 비슷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시는 인간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언어란 도구를 사용하여 한 편의 꽃처럼 색깔을 담아 함축적 문장으로 드러낸다.

공자의 논어 위정편(爲政篇) ‘子曰時三百(자왈시삼백)을 一言以蔽之(일언이폐지)하니 曰思無邪(왈사무사)니라’란 명구를 설명하지 않더라도 시는 독자에게 순수함을 선물한다.

시를 읽는 일은 아름다운 마음을 빛내는 일이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갖게 하는 일이다. 여름 피서에 시집 한 권 들고 그늘에 앉아 시집을 넘기는 것은 어떨까. 시가 어렵다면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냥 읽으면 된다. 한 송이의 꽃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는 바쁜 발길이 아니고 여유를 갖고 조금 더 자세히 보았을 때다. 시도 그렇다. 은유, 비유, 상징을 넣어 암호화시키는 것이 시다. 궁금하면 두세 번 읽으면 된다. 두세 번 읽어도 이해가 안 되면 책을 덮으면 된다. 시로 더위를 쫓는 일도 아름다운 꽃과 마주하고 있는 일처럼 멋진 피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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