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서 만난 공간의 신선한 충격 중에서는 성모당과 갓바위를 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두 곳은 영남 지역의 손꼽는 두 기도처입니다. 신심이 두터운 분들에게는 불경스런 말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겐 이 두 공간이 일종의 이음동의어, ‘쌍둥이 공간’으로 보였습니다. 겉모습만 다를 뿐 속 내용은 똑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간절한 기구(祈求)가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는 기도처로서의 공간 아우라에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습니다. 공간을 그렇게 완벽하게, 장엄하게, 활용하는 예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신성을 표방하는 거룩한 인위적 외형과 바닥까지 내려간 인간의 겸허한 내면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 만들어내는 위대한 공간이었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 장엄한 풍경 속의 한 입자가 될 것이라는 강한 예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천상은 그렇게 모두의 합심으로 지상에서도 구현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번 바깥나들이는 일본의 시모노세키가 그 행선지였습니다. 우리의 근대는 ‘관부연락선’과 함께 합니다. 한국과 일본, 두 공간을 이어주던 관부연락선, 그 시발과 종착의 표정들을 보고 싶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좋은 공간 체험이었습니다. 하나만 소개하겠습니다. 시모노세키 아카마(赤間) 신궁 앞에는 호수 같은 바다를 바라보는 부두 끝자리에 큰 닻이 하나 설치되어 있습니다. 땅 위에 닻을 매단 것이 무슨 까닭인가? 궁금증이 일어 그 일대의 고사(古事)를 탐문했습니다. 결론은 ‘이 신궁 일대를 배로 봐 달라’는 취지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 ‘공간 활용법’은 낯선 것이 아니었습니다. 산 전체를 기단(基壇)으로 삼아 삼 층 석탑을 쌓아 올렸다는 이야기, 지역이 배와 같은 모양이라(풍기가 문란하니) 어디 어디에 보(補)를 해서 배를 붙들어 매었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 많이 전해옵니다. 어쨌든, 땅 위에 닻을 매단 그 공간에 대한 도발적이고 적극적인 해석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아카마 신궁의 주인인, 전쟁에 져 수장(水葬)된 어린 일왕의 고사와 관련지어 생각해 보니 ‘함부로 애틋한’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그것 아니더라도, 인생은 항해이고, 바다는 모태이고, 나그네는 외롭고… 이런저런 회포가 그 발칙한 공간 활용법 앞에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마구 들락날락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