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수환 전 의성공고 교장
6월 하순경에 콩밭 중간 중간에 심은 수수가 7월의 뜨거운 여름 볕에 잘 자라서 8월 하순경이면 이삭이 피고 차츰 익어 고개를 숙인다. 이때가 되면 더위도 한풀이 꺾인 농촌에 멋진 또 하나의 콩밭 정취를 연출한다. 서늘해진 들 바람이 고개 숙인 수수 이삭을 살랑살랑 흔들며 농부의 등을 적신 땀을 식혀준다.

수수는 콩밭에 심어야 잘 자라는 것 같다. 수수만 별도로 심어보니 콩밭수수처럼 멋도 없지만 자람도 뒤진다. 콩과 수수는 서로 돕는 무슨 상호 작용이 있는 것 같다.

가을이 되어 콩이 익으면 콩 가지를 꺾어 콩동을 묶을 때는 수숫대가 꼭 필요하다. 잘 자란 수수에서 이삭은 잘라내고 남은 수숫대는 농부의 키보다 더 크다. 그런 수숫대를 콩동 바깥쪽에 대고 볏짚 새끼줄로 묶어서 콩동을 묶는다.

잘라낸 수수 이삭은 한 다발씩 묶어 나뭇가지 등에 걸어 말린 후에 알을 털면 좋은 건강식품인 수수를 얻는다. 수수밥, 수수경단, 수수조청 등을 만든다. 수수 알을 털어낸 빈 수수 이삭은 칡으로 묶어 수수 빗자루를 만들어 요긴하게 쓴다.

콩동은 양지바른 곳에 옮겨 세워 말린다. 겨울이 되어 잘 마르면 콩동을 헐어 콩 타작을 하고 남은 콩 가지는 좋은 땔감이 되며, 그 재료는 훌륭한 천연 세제인 잿물을 만든다. 콩 가지 말고도 그해에 자란 싸리나무나 참나무 등 풋나무의 재도 좋은 잿물이 나온다. 하얀 재라야 좋은 잿물이 나온다. 양잿물(가성소오다·NaOH)은 그 뒷날에 나왔다. 물론 비누가 나오기 전의 이야기다.

콩 타작 후에 또 나오는 콩깍지는 소의 품질 좋은 사료가 된다. 이 콩깍지 사료는 겨울 동안 소의 소중한 먹이다. 콩깍지와 여물과 당 가루(벼의 속 등겨)를 섞어서 가마솥에 푹 삶아서 쇠죽을 쑨다. 이 쇠죽을 퍼낼 때는 구수한 냄새가 난다.

한 끼에 두 양동이 정도의 쇠죽을 소귕이(구유)에 담아 주면 소는 꼬리를 흔들며 김이 무럭무럭 나는 뜨거운 쇠죽을 식은 윗부분부터 가려서 잘 먹는다. 쇠죽은 아침저녁 하루에 두 끼를 주지만 밭갈이 등 일을 시킨 날은 점심때도 콩 한 바가지 정도를 넣어서 끓인 특식 쇠죽을 준다. 낮에는 간식으로 여름철에는 베어다 놓은 생풀을 주고 겨울철은 볏짚을 풀어 준다. 소는 이렇게 쇠죽과 간식을 잘 먹고 통통하게 살이 쪄서 농가의 큰 일꾼, 큰 재산이 된다.

콩 타작을 한 후에 나오는 콩동을 묶는 데 쓰였던 수숫대는 어린이들의 미술학습에 쓰는 소중한 공작재료이다. 수수깡안경, 인형, 바람개비의 자루 등 온갖 작품이 만들어진다. 수수깡 안경을 쓰고 서로를 보며 “으흠!”하면서 웃기며 즐겁기만 하던 그 옛날이 그립다. 이 모두가 잊혀가는 한 시대 전의 옛이야기로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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