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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삼국유사목판사업본부장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분야가 복잡다단하고 파란만장하게 전개되어 가는 한국의 역사현장에, 또 하나의 파란이 일어나 한국호(韓國湖)가 출렁이고 있다. 그것은 바로 속칭 김영란법이다. 이 법의 제정취지와 기대되는 사회문화적 효과는 지대하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제1조(목적)가 밝히고 있듯,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의 수수(收受)를 금지함으로써 공직자 등의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고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입법목적이다. 어디든지 완벽한 청렴 사회는 없겠지만, 우리 사회는 썩어도 너무 썩었고 그 진원지가 정치권력과 함께하는 ‘클렙토크라시(Kleptocracy)’ 형이기 때문에 공직의 공정성을 보장하는 김영란법의 필요성은 더욱 크다 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부작용은 있을 수 있고 사소한 부작용으로 대사(大事)를 그르치는 사례가 역사상 비일비재하다. 하물며 도입단계에서 뻔히 예견되는 부작용은 예방하는 것이 지혜롭고 열린사회의 입법자세다.

김영란법의 가장 큰 문제는 안 그래도 땅에 떨어진 인간애(人間愛)라는 미풍양속과 가정윤리가 싹마저 잘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다. 법 제8조 공직자 등의 배우자의 금품수수금지 규정은 당연히 필요하며 법적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동법 제9조(수수 금지 금품 등의 신고 및 처리) 1항의 “공직자 등은 자신의 배우자가 수수 금지 금품 등을 받거나 그 제공의 약속 또는 의사표시를 받은 사실을 안 경우 소속기관장에게 바로 서면으로 신고하여야 한다”는 조항에는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과 믿음을 토대로 하는 행복한 가정 꾸리기보다 국법적용을 우선하는 진(秦)나라식 전체주의형 법치국가의 냄새가 짙기 때문이다. 만일 공직자인 남편이 어떤 이유든지 1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받았고 부인이 이를 알고 금품의 반환을 권하여도 돌려주지 않는다면, 부인은 이 사실을 남편의 소속기관장에 신고하여야 한다. 부인이 공직자인 반대인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공직자인 남편이 끝까지 돌려주지 않더라도 만약 현숙한 부인이라면, 타이르고 달래면서 잘못을 고치기를 기다려야지 이를 소속기관장 등에게 신고하여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일찍이 공자는, 아버지가 양을 훔쳤는데 증인으로 나와서 이를 입증한 아들을 참으로 정직한 사람이라며 섭공(葉公)이 자랑하자, 우리 마을의 정직한 사람은 그러하지 아니하니,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의 잘못을 숨겨주며, 정직은 이 가운데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이른바 파파라치의 양산으로 불신사회를 가속화시키는 제도다. 동법 제13조(위반행위의 신고 등)는 “누구든지 이 법의 위반행위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경우에는 수사기관 등에 신고할 수 있다.” 라고 규정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감시한 오가작통법이 연상된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숨겨주고 하는 점은 선양한다는 도덕원리에 너무나 배치되는 악법이 파파라치 장려제도인 것이다.

“법의 뜻은 법밖에 있다(法之意 存乎法之外)”는 황종희(黃宗羲)의 명언을 생각하며 도덕·윤리에 맡겨야 할 사항을 법으로 제재하는 법적 장치는 극소화하여야 할 것이다.

윤용섭 삼국유사목판사업본부장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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