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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힐링처 십승지] 9.강원도 철원의 토성리 오덕리

타 농촌과 달리 젊은이들 많고 부농 꿈꾸며 살기좋은 마을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등록일 2016년08월08일 20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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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성리 민속마을 전경
강원도 철원군은 한반도 중부의 내륙지방에 중심지여서 찾는 이들이 꾸준한 곳이다. 통일한국의 수도로 거론되기도 하는 철원하면 떠오르는 것은 철원 평야와 한탄강일 게다.

토성리 민속마을

한탄강을 젖줄로 철원평야를 옥토로 일구고 사는 마을이 철원군 갈말읍 토성리(土城里)다. 민속마을로 지정된 토성리는 살기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철원군청으로부터 43번 국도를 따라 북쪽으로 11Km가량 가면 토성민속마을이 나온다. 덕령산을 뒤쪽에 두고 마을 앞 들판 넘어 한탄강의 지류인 폭이 꽤 넓은 화강(남대천)이 흐르는 동향의 쾌적하고 조용한 마을이다.

토성민속마을은 농경지 한가운데 삼한시대에 성축된 토성(강원도 지방기념물 제24호)이 있고 마을 앞뜰은 준 평야지대로 형성된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특히 비옥한 농토를 중심으로 산과 하천이 어우러진 마을이다. 수려한 자연 경관과 향토음식개발 등을 통한 농외소득사업으로 새롭게 도약하는 마을이다.

현재는 지경리, 청양5리 등 3개 마을로 분포되어 있으나 토성민속마을은 철원의 넓은 평야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는 집단부락이다. 철원의 더불어 명산, 대천이 있어 많은 전설과 민속예술인 농악이 발전해 온 고장이다.

토성의 자랑할 만한 문화로 빼놓을 수 없는 토성농악은 두레농악으로 명절 때는 오락농악으로, 마을 행사때는 연희농악으로 발전해온 전통이 뚜렷하다.

일본 제국주의의 탄압아래 규모는 축소되고 변형되었으나 아직도 토성민속마을에서는 정월대보름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농악놀이를 하면서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유대감, 풍년농사를 기원하며 조상들의 훌륭한 정신을 계승 발전 시키고 있다.



이 마을주민의 주 소득원은 청정오대쌀 생산과 무공해 청정고추, 황기및 오갈피, 인삼 재배 등과 한우, 양돈업다. 산과 하천이 잘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관과 향토음식(도토리묵, 감자전 등) 개발 등으로 새로운 소득원의 꿈에 부풀어 있다. 이 마을은 보통의 농촌 마을과는 달리 50대 이하의 젊은이들의 거주비율이 전체의 77%로 활기찬 마을이다.



마을 이름 그대로 토성리에는 둘레 1km의 넓이 62.500제곱미터 (18,906평)의 작은 성이 있다. 평탄한 곳에 점토를 재료로 정방형으로 성축된 특이한 성이 있다. 성내 경지에서 주거했던 흔적과 출토된 무문토기와 석기류 등 선사시대 유물들은 귀중한 문화자산이다. 이 마을에 강원도 지방기념물 제22호인 지석묘 2기가 보존되어 있으며 마제석기류, 무문토기류 등 석기유물 20여점이 보관되어 있다.

토성 마을 내에 자리하고 있는 지석묘의 경우는 남대천의 강변을 따라 덕령산 협곡의 소분지 등에 같은 형, 같은 방향, 일정한 간격으로 일직선상에 구축되어 있다.

남대천은 철원군 일대를 흐르는 하천으로 유역의 골짜기 일부는 과거 금강산지역으로 들어가는 통로였으며, 금강산전철도 이 골짜기를 따라 부설되었다. 넓은 자갈밭에 텐트를 친 가족단위의 캠핑을 하는 유원지로도 유명하며, 민물낚시도 으뜸이다. 민물낚시로는 민물붕어 및 여러 어종이 서식하고 있다.



동송읍 오덕리

철원군 동송읍 철원평야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오덕리(五德里)는 철원 너른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요의 땅이다.

오덕리 언덕에 서서 보면 우뚝 솟은 산은 학(두루미)이 막 내려앉은 형상을 하고 있는 금학산이다. 오덕리는 학과 관련한 지명이 많다. 오덕4리의 지명은 봉학동, 오덕6리 지명은 송학동이며 마을 근처 저수지의 이름도 학저수지다.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904년 철원으로 도읍을 옮길 때 도선이 이 산을 진산으로 정하면 300년을 통치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한국의 100대 명산 중 하나다.



오덕리의 가장 큰 잠재력은 젊은 농민이 많다는 것이다. 다른 지역과 달리 30~40대 신세대 영농인들이 부농의 꿈을 꾸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마을 안에 오덕초등학교가 있고 바로 옆 동송읍내에 철원중, 철원여중, 철원고, 철원여고가 있어 교육환경도 좋은 편이다.

오덕리 학마을은 이름에 걸맞게 올해 새로운 비상을 준비 중이다. 오덕 2, 4, 5, 6리 마을은 지난해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 대상지로 최종 선정돼 올해부터 총 57억원을 연차별로 지원받게 됐다.

주민들은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을 계기로 수도작 외에 다양한 소득사업을 준비 중이다. 우선 주변의 자연환경과 풍부한 관광자원을 활용해 농촌체험의 거점마을을 꿈꾸고 있다. 농촌마을종합개발사업의 내용도 다양한 소득사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주민들은 쌀와인가공공장, 학마을 농업체험교육농장, 도자기 소득사업장, 학마을 오대쌀밥집 등을 구상해냈다. 농업체험교육농장에서는 친환경 농업을 중심으로 오대쌀의 생산과정 견학은 물론 도시 소비자 초청 행사도 진행된다.

마을 인근에는 금학산과 학저수지 이외에도 국보63호 비로자나불과 보물 223호 3층석탑을 보유한 도피안사, 철새도래지 등 뛰어난 관광자원이 많다.

이 마을에서 만난 한 주민은 “우리 마을이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곳으로 뜨고 있다. 새로운 부가가치 창출을 위해 친환경농업, 쌀가공사업 등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도피안사

오덕리 뒤 우거진 주변 숲이 병풍처럼 둘러진 곳에 있는 ‘도피안(到彼岸)사’는 신라 말 도선국사가 철불을 조성하고 안치하기 위하여 만든 절이라고 한다. 본전인 대적광전 안에 모셔져 있는 철불은 손가락을 감싸 쥐고 있는 지권인을 하고 있으니 비로자나불이다. 장흥 보림사 철불과 함께 9세기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불상으로 불상 뒤쪽에 100여 자의 조성기가 새겨져 있는데 1,500여 명의 향도가 함께 조성했다는 기록과 함께 만들어진 연대를 신라 경문왕 5년인 865년으로 알리고 있다. 신라 말 선종이 일어나고 지방호족세력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귀한 금석문이다. 당시 철조불상이 영원한 안식처인 피안에 이르러렀다 하여 절이름이 도피안사로 명명되었다고 한다.

철원에는 철원 8경이 있다. 삼부연은 조선 현종때의 문신 영의정 김수항의 안거지(安倨地)였고, 폭포 동쪽 용화동에는 임진왜란때 피난하여 이 마을을 개척한 동래정씨 일가가 지금도 세거(世居)하고 있다.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고석정은 한탄강 중앙에 10m 높이의 거대한 기암이 우뚝 솟아 있는 현무암 분출지이며 조선조 초기 임꺽정의 활동무대로 등 많은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 곳에서 상류로 약 2km 지점에 직탕폭포이 있어 관광객이 즐겨 찾고 있다.

화강 다슬기축제

철원의 여름철 대표축제인 화강 다슬기축제. 지난 6일 개막돼 9일까지 나흘 동안 화강쉬리공원과 김화생활체육공원 일대에서 피서객들을 유혹했다. 올해로 9회째를 맞은 다슬기축제는 청정 화강변을 배경으로 철원에서만 접할 수 있는 특별한 관광 컨텐츠로 매년 10만여명의 피서객이 찾는다. 특히 올해는 화강다리 위에서 수영장으로 이어지는 워터슬라이드가 설치돼 예년보다 더욱 신나고 재미있는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체험시설이 마련됐다

철원하면 떠 오른 인물은 후고구려를 개창하고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긴 비운의 혁명아 궁예와 고려말의 충신 최영 장군이다. 철원군은 갈말읍 신철원3리 용화동에서 해발 923m 명성산에 이르는 ‘궁예길 관광자원개발사업’을 2019년 완공 목표로 추진된다. 명성산과 용화저수지, 철원8경 중 하나인 삼부연 폭포를 잇는 구간을 궁예길로 관광벨트화해 일상에서 벗어난 힐링 공간으로 철원을 대표할 수 있는 랜드마크로 개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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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위리 방향(학마을권역센터 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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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탕폭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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