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이들을 봐, 꽃잎들의 몸을 열고 닫는 싸리문 사이로 샘물 같은 웃음과 길 끝으로 물동이를 이고 가는 모습 보이잖아, 해 지는 저녁, 방마다 알전구 달아놓고, 복(福)자 새겨진 밥그릇을 앞에 둔 가장의 모습, 얼마나 늠름하신지. 패랭이 잎잎마다 다 보인다, 다 보여.
감상)아무 생각도 안 오는 날 있지, 사방의 녹음은 밋밋하고,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아무런 슬픔도 주지 못하고, 친구의 부고에도 놀라움 없는 날 있지, 그런 날은 하늘이 아니라 아래를 봐야 해, 발등을 덮는 패랭이꽃 같은 것 보다 보면 오는 것 있지, 가령 잊었던 고향의 치욕 같은 것. (시인 최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