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무(桓武·737~806년)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데 대해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다. 무령왕의 아들인 성명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과의 교류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아키히도(明仁 83) 일왕이 2001년 12월 자신의 생일을 맞아 마련된 공개석상에서 자신이 백제계 핏줄임을 이렇게 언급했다. 이후 2004년에는 일왕의 당숙인 아사카노미야(朝香宮誠彦王)가 충남 공주시의 무령왕릉에서 제사를 지기도 했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해온 일왕 아키히토가 지난달 13일 생전 양위 의사를 밝히면서 일본 열도가 들끓고 있다. 아키히토는 비디오 메시지 형식으로 생전 양위 의향을 밝혔다. 일왕이 살아있을 때 물러나는 것은 200여년 만에 처음이다. 아키히도 일왕은 국민통합의 상징적 존재다. 아키히토는 1989년 연호 헤이세이(平成)로 즉위했다. 일본 왕실은 110명이 왕위를 이어왔으며 평균 재위 기간은 15.8년으로 지금 일왕은 28년째다. 아버지 쇼와(昭和) 일왕이 세운 최장 재위기록 62년엔 어림없지만 역대 평균 재위 기간 보다는 훨씬 오랜 기간이다. 아키히토 일왕의 생전 양위가 우리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그의 막강한 영향력 때문이다.

북핵으로 촉발된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민족주의가 거칠게 대립하면서 신냉전시대를 맞고 있다. 아베 정부는 전쟁이 가능한 나라로 가는 개헌을 기정 사실화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 정부가 성주에 배치하려는 사드 문제를 놓고 중화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중국에 맞서는 미국과 일본은 동맹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중국과 센카쿠 열도를 놓고 분쟁하고 있는 일본민족주의의 발호가 가속화되고 있다.

일본은 한국의 영토인 독도를 자국의 영토라고 교육하고, 방위백서에 10년이 넘게 그렇게 기술하고 있다. 해마다 8월이면 우리는 일제 침탈의 아픈 역사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아키히토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평화헌법에 대한 믿음을 보여줬다. 그의 퇴위가 아베정부의 민족주의 광기를 발호하게 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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