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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화인의원 원장
‘행복’의 사전적 의미는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를 말한다. 만족과 기쁨이라는 것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확연히 다를 것이다. 이러한 행복을 계량화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겠지만 그런데도‘국민행복지수’가 가끔 지면에 등장한다.

유엔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는 지난 3월 국내총생산(GDP), 건강수명, 어려울 때 도와줄 사람, 부패지수, 삶을 선택할 자유, 기부 등 6가지를 종합한, 올해로 네 번째인 ‘세계 행복보고서 2016’을 발표했다.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는 점점 추락하고 있다. 유엔 자문기구가 지난 3월에 발표한 ‘2016세계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조사대상 157개 국가 중 58위를 기록해 지난해의 47위에서 11계단 곤두박질했고, 지난해에도 2014년의 41위에 비해 6계단 추락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작금에 길을 가거나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서민들의 모습에서 행복한 표정을 좀처럼 발견할 수 없다. 위정자들을 비롯한 혹자들은 이를 지독한 더위 탓으로 돌리고 싶겠지만 보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 서민들의 삶은 점점 고단해지고, 밤새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물론 부탄 정부의 자체조사 결과에 불과하지만 세계 최빈국에 속하는 부탄 국민의 행복지수가 매우 높게 나타나는 것 - 세계 행복보고서 2016에 따르면 부탄은 84위 - 과 같이 국민행복이라는 것은 매우 주관적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여러 환경들이 그만큼 나빠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11위로 성장했지만 국민행복지수는 오히려 추락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은 각종 정책 입안자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또한 국민행복을 GDP로 잴 수 없듯이 최근 들어 경제성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보여주는 GDP 성장에 대한 회의론과 한계론이 대두되는 이유가 되고 있다.

흔히들 ‘정치는 국민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금의 우리 정치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은커녕 그것을 오히려 해치는 스트레스만 푹푹 안기고 있다. 바야흐로 국민행복의 수난시대이다. 이러한 정치행태는 작금은 물론 과거에도 그랬고, 여와 야를 막론하고 변함이 없는, 그야말로 초지일관이다.

지난 2013년 2월 출범한 박근혜 정권은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3년 5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 국민은 그 전보다 얼마나 행복해졌을까?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미 그런 기대와 희망을 접고 있다. 국민행복은 행복지수만큼이나 저만치 멀어져가고 있다.

세상에 밝은 정치권에서 이러한 국민의 불편한 심기를 간파하고는 ‘국민행복’을 화두로 던지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지난달에는 전 야당대표이자 유력한 대권주자가 약 한달 간의 히말라야 구상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그 일성으로 “정치의 목적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에 국민행복에는 안중에 없으면서 오로지 정파와 계파의 이익만을 바라보며 치열하게 전개되던 여야 각 당의 당권경쟁도 이제 서서히 그 막을 내리고 있다. 아울러 지독했던 더위도 한풀 꺾이며 막바지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이제부터는 국민행복이 여야 정치권에서 입버릇처럼 내뱉는 단순한 슬로건이나 캐치프레이즈에 그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의 행복을 차근차근 생산해내는 정책과 공약의 굳건한 프레임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해본다. 우리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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