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천지에 온 듯한 마을…일상에 지친 현대인들 마음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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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아래 경상남도 하동군.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변의 고을이다. 우리 국토의 대동맥 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달리다 멈춘 지리산이 생명을 잉태하는 섬진강과 만나 기묘한 조화를 이룬 곳이다. 신라 경덕왕 16년(757년)부터 불려온 ‘하동(河東)’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강의 동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하동군 화개부터 하동송림을 거쳐 남해 바다로 가는 섬진강 물길 ‘하동포구 팔십리’는 화려강산 그 자체다. 


정감록 십승지 중에 하나가 지리산 청학동이다.『정감록』에서는 “진주 서쪽 100리, (중략) 석문을 거쳐 물 속 동굴을 십리쯤 들어가면 그 안에 신선들이 농사를 짓고 산다”고 했다. 고려시대의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지리산 안에 청학동이 있으니 길이 매우 좁아서 사람이 겨우 통행할 만하고 엎드려 수리를 가면 곧 넓은 곳이 나타난다. 사방이 모두 옥토라 곡식을 뿌려 가꾸기에 알맞다.”라고 했으나 청학동을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한다. 김종직은 피아골을, 김일손은 불일폭포를, 유운룡은 세석평전을 청학동이라고 짐작했다. 이외에도 지리산 청학동으로 추정되는 곳은 청학이골(악양면 등촌리), 상덕평마을(선비샘 아래) 등이다. 청학동을 못 찾은게 아니라 지리산 남쪽터 곳곳이 청학동인 셈이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은 하동 악양(岳陽)면 매계리를 청학동이라고 지적했다. 악양의 주산 형제봉 아래 작은 주산격인 매계리 뒷산(수리봉)에 오르면 그 이름처럼 독수리(매)가 내려다 보듯이 악양이 한눈에 보인다. 매계는 산이 빼어나고 물이 좋아 예로부터 이상향이라 불리운 청학동(靑鶴洞)의 전설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원래 이름은 ‘맷골’이었다. 부산에서 살다가 7년 전에 조상들이 살던 악양이 그리워 매계리에 안착한 강훈채 이장(59세)은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하다”는 짧은 말로 귀농생활의 여유로움을 말했다.

귀농 귀촌을 꿈꾸는 이들이 한번쯤은 와 보는 곳이 하동 악양면이다. 악양면은 지리산 자락인 형제봉(1,117m)과 구재봉 사이다. 한가운데 시냇물(악양천)이 흐른다. 지금의 눈으로 봐도 악양은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힐 만하다. 남해에서 섬진강을 따라 13km 올라가다 악양골로 들어서 악양천을 거슬러 올라가며 양편에 많은 마을이 자리 잡았다. 악양면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면 별천지에 온듯한 느낌을 갖는다. 시골처녀의 해맑은 미소처럼 정다운 예쁜 돌담길이 반긴다. 악양은 일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여행객들의 힐링처로도 손색이 없다. 옛 고소산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악양면 평사리 마을은 박경리의 대하 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하다. 평사리는 드라마촬영을 위해 최참판댁 등 토지 등장인물들의 집이 지어져 있어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섬진강에 맞닿은 평사리부터 올라가는 봉대리, 입석리, 정서리, 매계리, 동매리는 곳곳에 동남향의 좋은 명당이 널려있다. 평사리 ‘무딤이 들판’은 넓이가 140만㎡(140㏊) 40여만 평이다. 8월의 내리쬐는 뙤약볕에 벼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무딤이들은 풍요로운 악양의 생산처이다. 들판에 외로이 서 있는 ‘부부송’, 악양루, 동정호가 섬진강과 어우러져 조화롭고 평화롭다. 악양면 정동리 부계마을과 정동(亭東)마을은 오래 전 청동기시대부터 사람이 모여 거주한 곳이라 전해지는 오랜된 마을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취간림이라는 숲도 고색 창연하다.

군에서는 무딤이 들판을 고품질 쌀 생산과 농업 생태환경 보전, 그리고 볼거리를 제공할 계획이다. 최대성 하동군 홍보팀장은 “하동은 안전한 농산물을 원하는 소비자의 욕구에 부응하고 생산농가의 소득을 향상시키는 농업 본연의 목적 외에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관광명소”라며 “특히 악양은 수년 전부터 귀농 귀촌인들이 들어오면서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하동읍 광평리 강변에 너른 솔밭(송림)이 있는데 장관이다. 1만2천 평쯤의 솔밭에 200년 전후 된 소나무가 울창하게 들어차 있다.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것 중에 하동의 최고의 명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섬진강 맑은 물과 모래사장이 함께 어우러져 있어 쉼터로 그저 그만이다. 그 앞에 하동과 광양을 잇는 인도교인 섬진교가 놓여 있다. 지난 6월 말 송림공원과 섬진강 백사장 일원에서 ‘알프스 하동 섬진강 재첩축제’가 열렸다.

늘 바쁘다며 갈 길에 쫒기다시피한 현대인들도 이곳에 오면 누구나 마음이 느긋해진다. 우리 산하(山河)는 어디엘 가나 해질녘 노을 물들 때가 아름답다. 뜨거운 섬진강의 저물녘은 그 풍광이 장엄하면서도 고요하다. 시인 묵객들의 감탄사가 없을 수가 없다.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의 <섬진강1>끝구절은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고 했고, 고은 선생의<섬진강에서>는 첫 구절이 “저문 강물을 보라, 저문 강물을 보라”로 시작한다. 전라도 구례 사람 이시영의 섬진강 노래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 속까지 짙게 저며온다. 그의 시 중에서 <형님네 부부의 초상>([바람속으로], 창작과비평사 1986)은 명시다.


<형님네 부부의 초상>

고향은 형님의 늙은 얼굴
혹은 노동으로 단련된 형수의 단단한 어깨
이마가 서리처럼 하얀 지리산이 나를 낳았고
허리 푸른 섬진강이 나를 키웠다
낮이면 나를 낳은 왕시루봉 골짜기에 올라 솔나무를 하고
저녁이면 무릎에 턱을 괴고 앉아
저무는 강물을 바라보며
어느 먼 곳을 그리워 했지

(.....)

고향은 형님의 늙은 얼굴
혹은 노동으로 단련된 형수의 너른 어깨
우리가 떠난 들을 그들이 일구고
모두가 떠난 땅에서 그들은 다시 시작한다
아침노을의 이마에서 빛나던 지리산이
저녘 섬진강의 보랏빛 물결에
잠시 그 고단한 허리를 담글 때까지

하동엔 청학동(靑鶴洞) 마을이 하나 더 있다. 악양면에서 청암면을 넘는 회남재를 지나 4km 비포장도로를 가면 나오는 청암면 묵계리(默溪里)다. 섬진강 지류인 횡천강을 약 50리 정도 거슬러 올라간 해발 약 800m의 첩첩산중. 구한국과 일제강점기에 『정감록』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이룬 마을로, 유불선갱정유도교(儒佛仙更定儒道敎)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전통 생활방식을 살려왔으나, 이제는 관광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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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제봉에서 바라본 악양들판

악양들에서 산넘어 묵계리 가는 50리 길은 굴곡 많은 우리 인생사 같이 보일 듯 말듯한 구불구불한 고갯길. 회남재(回南,해발 740m)는 청암면 묵계리와 악양면 등촌리를 잇는 길의 고개다. 고갯마루에 정자를 세워 악양면이 한눈에 조망된다. 10월에 ‘지리산 회남재 숲길 걷기대회’가 열린다.

회남재는 그 유명한 지리산 빨치산(파르티잔, 비정규 게릴라부대)들의 뜨거운 애환이 서려있다. 산적(山賊)이나 빨치산들에게는 식량이나 물자를 구하기 위한 길목이다. 1948년 여수순천 반란사건 이후 지리산으로 들어가 지리산유격대로 불리는 남부군은 이현상(1906∼53)이 토벌대에 의해 53년 9월 사살, 섬진강에 화장되면서 그 숨가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현상은 북한의 제1호 열사증을 추서받아 애국열사릉에도 가장 먼저 묻혔고 90년 8월에는 조국통일상도 추서됐다. 월북한 1남 3녀 중 막내딸 이상진은 북한의 외교관으로 김대중대통령의 방북 때 만수대의사당을 직접 안내히기도했다. 이현상은 중앙고보 재학중 6.10만세운동으로 시작한 항일투사로 세 번째 감옥살이를 하던 중 20여일간 단식투쟁으로 석방된 단식투쟁의 원조다. 덕유산에서 은거하다 해방 후에는 박헌영과 남로당에서 공산주의로 통일조국을 건설하려했다. 전북 금산군(현 충남)에서 태어나 지리산 화개면 빗점골에서 생을 마친 그가 지리산에서 조선인민유격대를 지휘하며 창작한 한시이다.

智異風雲當鴻動 지리산에 풍운 일어 기러기 떼 흩어지니
伏劍千里南走越 남쪽으로 천 리 길, 검을 품고 달려왔네
一念何時非祖國 오직 한 뜻,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 없고
胸有萬甲心有血 가슴에는 철의 각오, 마음속엔 끓는 피 있네
  

▶하동 가는 길

하동읍은 남해고속도로 하동IC에서 19번 국도로 북으로 섬진강을 따라 12km올라가면 나온다. 저속 운행을 하고 싶은 이들은 국도를 타고 다녀도 좋다. 부산-마산-진주-순천-목포로 이어지는 2번 국도가 하동읍을 지나 간다. 대중교통도 불편하지 않다. 국도 2호선과 비슷하게 부전역(부산)-마산-진주-순천-광주를 연결하는 경전선 열차도 하동역을 거친다. 서울 등 어느 대도시에서나 하동으로 고속버스가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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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모 기자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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