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죽국 역사 속 기자조선 실체 밝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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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용섭 삼국유사목판사업본부장

단군왕검이 아사달에 조선을 개국하였다는 기록 다음, 일연선사는 당(唐) ‘배구전(裵矩傳)’을 인용하여 다시 고조선에 대하여 탐색한다. 삼국유사 본문은 아주 짧으나, 깊이 되씹어볼 내용이 많다. 일연의 주석을 뺀 본문은 다음과 같다.

“당(唐) 배구전운(裵矩傳云) 고려(高麗) 본고죽국(本孤竹國), 주이봉기자위조선(周以封箕子爲朝鮮), 한(漢) 분치삼군(分置三郡), 위현도·낙랑·대방(謂玄?·樂浪·帶方). 통전(通典) 역동차설(亦同此說).”

우리말로 새기면 다음과 같다.

“당나라 배구전에 말하기를, 고려는 본래 고죽국인데 주나라가 이것으로써 기자를 봉하여 조선이 되었다. 한나라가 나누어 세 군을 두었는데, 현도·낙랑·대방이라 일컫는다.”

이 글의 요점은 첫째, 고려, 즉 고구려는 본래 고죽국이었다는 것이요, 둘째, 고죽국 자리에 한나라가 삼군(三郡)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고구려를 중국사서(史書)에는 흔히 고려라고 기록한다. 예를 들어 자치토가에는 ‘고구려’를 늘 ‘고려’라 하고 있고 당태종이 고구려를 칠 대, 이를 반대하는 상소의 제목이 ‘간친정고려소(諫親征高麗疏:울지경덕 지음)’와 ‘간토고려소(諫討高麗疏:저수량 지음)’다. 그리고 고죽국은 과연 어떤 나라인가? 고죽국이라면 백이숙제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은(殷)나라 말기, 폭군 주왕(紂王)이 백성을 괴롭히자, 서쪽의 제후인 주(周)나라의 희발(姬發:주의 무왕이 됨)이 그를 따르는 제후들과 거병하여 은의 주왕을 치고 천하를 차지한, ‘은주교체(殷周交替)’라 하는 큰 사건이 있었다. 이 때, 고죽국의 태자이던 백이와 숙제가 서로 임금 자리를 양보하다가 함께 주나라의 희창(姬昌: 주의 문왕이 됨)을 찾아갔는데, 그는 이미 죽고 아들인 희발이 군대를 일으키고 있었다.

이에 백이·숙제가 삼년상을 덜 치루고 군사를 일으키니 불효요 신하로서 임금을 치니 불충이라며 저지하였는데, 희발은 듣지 않고 은을 쳤다. 은나라가 망하자 백이·숙제는 의롭지 않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면서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뜯어 먹다가 굶어죽었다. 그 뒤, 백이·숙제는 청렴강직한 인물의 표본이 되어, 공자·맹자 같은 성인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그래서 백이·숙제와 고죽국이라 하면 당연히 중국사람이요 중국의 나라라고 알아왔다. 그런데 이 고죽국의 고구려가 하니, 아연히 책을 덮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은 건성으로 지나칠 문제가 아니다. 물론 고죽과 고구려가 같은 나라는 아니고 그 땅, 또는 그 계통을 승계했다고 해석되지만.

본래 이 글은 수·당 양대(兩代)에 걸친 중신(重臣), 배구(557~627)가 수양제에게 고구려를 공략하여야 한다고 진언한 말이다. 본래 중국에 속하던 땅을 지금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으면서 돌궐과 연맹하니 공격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인다. ‘배구전’은 ‘수서(隋書)’와 ‘구당서’·‘신당서’의 ‘열전(列傳)’에 모두 있는데, 일연선사가 인용한 글은 ‘신당서’의 내용과 흡사하다. 그런데 여기서 고죽국의 위치와 성격, 고죽국에 자리한 기자조선의 실체, 고구려가 그 땅을 계승한 연혁 등은 철저히 연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곳이 바로 위만이 도읍한 조선 땅이라 하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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