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인 어제는 난데없이 귀뚜라미 한 마리가 집안 거실에 뛰어들었다. 꽁꽁 닫힌 아파트에 그놈이 어떻게 침범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집안으로 뛰어든 귀뚜라미는 순식간에 소파 밑으로 숨었다. 조금 있자니 소파 아래서 노래까지 한 곡 뽑아 제치지 않는가. 옛날 궁궐에서는 궁녀들이 머리맡에 망사 창을 단 금테 두른 귀뚜라미 조롱을 매달아 두고 소리를 즐겼다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해보니 제 스스로 뛰어든 귀뚜라미가 웬 횡재냐 싶어서 한참을 가만히 뒀다. 켜 두었던 TV까지 끄고 거실 바닥에 앉아 귀뚜라미 소리를 들으면서 염천, 폭염이니 하지만 집안까지 뛰어든 가을을 실감했다.

사실 귀뚜라미는 우는 것도 노래하는 것도 아니다. 귀뚜라미 소리는 앞날개를 마찰해서 내기 때문에 연주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연주가 절정에 이르면 최고 4천500㎐의 마찰음을 낸다고 한다. 초당 3회 이상 두 앞날개를 비벼대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셈이다. 이렇게 귀뚜라미는 장장 4시간 반 동안이나 연주할 수 있다.

변온동물인 귀뚜라미는 주변 온도에 민감하다. 요즘 부쩍 귀뚜라미 소리가 많이 들리는 것은 폭염이 지속 된 탓이란 주장이 있다. 귀뚜라미가 날개를 비벼 소리를 낼 때는 근육이 수축하게 되는데 이런 신체활동은 온도가 높을수록 반응이 빨라진다. 즉 기온이 높으면 울음소리 간격이 빨라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간격이 길어진다는 것. 무더위 속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은 바로 울음소리 간격이 그만큼 짧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모스 돌베어는 1897년 ‘온도계 구실을 하는 귀뚜라미’란 논물을 썼다. 귀뚜라미가 14초 동안 우는 횟수에 40을 더하면 화씨온도가 나온다는 이론이다. 이를 ‘돌베어 법칙’이라 부를 정도로 꽤 유명한 연구였다. 예를 들어 14초 동안 귀뚜라미가 35회 울었다면 화씨온도 75도이고 섭씨로 환산하면 24℃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무더위가 계속되면서 수많은 귀뚜라미들이 알에서 깨났고, 그중 한 마리가 집안으로 뛰어들어 가을을 알렸다. 소파 아래 숨은 가을 전령 귀뚜라미를 색출해 창밖으로 내보내는 순간 창밖 귀뚜라미 합주 소리가 한꺼번에 집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