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프타운 해변에서 10㎞ 떨어진 바위섬 로벤은 경관이 아름다운 섬이다. 하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저항한 흑인들을 수감한 세상에서 가장 악명높고 야만적인 감옥이 있었다.

1960년대 구타와 힘겨운 노동으로 생활을 이어가던 수감자들은 간수 몰래 셔츠를 둥글게 뭉쳐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정치노선에 따라 갈라져 있던 수감자들은 축구를 위해 뭉쳐 한목소리로 교도소 당국자에게 축구리그를 요구했다. 4년간의 투쟁 끝에 축구리그 마카나축구협회가 결성됐다. 수감자 1천400여 명은 선수, 매니저, 심판, 코치를 구성, 3개 리그를 꾸렸다. 회색빛의 잔인한 수용소는 축구 이야기로 활기를 되찾았다. 수감자들에게 축구는 고된 생활을 잊게 해주는 유일한 일탈이었고, 사분오열 정치집단을 결속시켜 주는 끈이었다. “우리 중 많은 사람이 축구 없이는 수감생활의 절망을 견뎌내지 못했을 것이다” 수감생활을 했던 자들의 증언이다.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 알제리대학 시절 축구팀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실존문학의 거봉 알베르 까뮈의 축구에 대한 찬사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고 노래한 윤동주 시인도 학창시절 축구선수였다. 세계적인 가수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도 골키퍼 출신의 축구선수였다. 이처럼 유명 예술가 중 축구선수가 적지 않은 것은 축구 자체에 아름다움이 충만해 있음을 말해준다.

“인생의 어느 영역에서도 그렇게 좁은 공간에서, 그렇게 간단한 도구로, 그렇게 기초적이면서도 극히 다채로운 사건들을 빚어내는 제도는 지구 상에서 축구가 유일하다” 독일 예술사학자 호로스트브레데캄프의 말이다.

4대4 동점으로 맞선 승부차기에 지구촌은 숨을 죽였다. 브라질의 5번째 키커 네이마르가 독일 골망을 가르자 ‘축구성지’ 마라카낭은 함성으로 뒤 덮였다. 120분 연장혈투에 이어 승부차기서 5대4로 승패가 갈린 리우올림픽 남자축구 결승전은 시종일관 스릴이 넘친 대 드라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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