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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시인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는 어떤 사건으로 말미암아 의미가 생겨난다고 주장했다.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을 만한 뜻밖의 일들은 대부분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망각된다. 하지만 특정 사건이 특정 맥락에 놓이는 순간 의미가 생성된다. 그에 의하면 역사는 의미 있는 사건의 기록이다.

한 개인의 인생살이도 그렇다. 반복되는 일상사는 무의미하면서도 동시에 의미를 갖는다. 파란만장한 역정을 극복하고 일가를 성취한 스토리텔링은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웅숭깊은 삶의 편린인 셈이다.

선거투표 전에 유념하는 사항이 있다. 다름 아닌 후보자가 살아온 내력. 동네방네 떠벌리듯 나열한 스펙보다는 그 이면에 숨겨진 인생길에 관심을 갖는다. 과거의 궤적을 더듬어보면 장래의 지향을 예단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특히 굴곡진 삶의 반전 신화를 이룩한 인물은 왠지 호감이 간다. 끝없는 고통을 감내한 능력만큼 비범한 재능이 또 있을까. 세상 경험 없는 지도자는 초보 운전자처럼 믿음이 가지 않는다.

얘기 하나. 유구한 중국 역사에서 평민 출신의 창업 군주는 명 태조 주원장과 한 고조 유방뿐이다. 특히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은 안휘성의 빈농 태생으로, 길거리에서 목탁을 치면서 걸식하는 탁발승 노릇도 했다. 역대 제왕은 모두 북방에서 나왔는데 그는 유일한 남방의 천자였다.

얘기 둘.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유년 시절은 불우했다. 학교도 못 다닐 정도로 어려웠고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했다. 훗날 명성을 얻은 그의 회고담. 가난했기에 ‘성냥팔이 소녀’를 떠올렸고, 놀림을 받았기에 ‘미운 오리 새끼’가 나왔다고.

얘기 셋. 드라마 ‘미생’은 프로 바둑 입단에 실패한 고졸 학력의 장그래가 세상을 배워가는 이야기다. 명문대 출신이 즐비한 대기업에서 뛰어난 혜안을 보이며 핵심 인재로 성장하는 성공담.

문학을 하기에 정치 문제는 무심한 편이다. 신문도 제목 정도만 눈대중할 따름이다. 한데 집권 여당 대표로 당선된 이정현 의원의 기사는 나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했다.

맘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영웅이 탄생한 것이다. 텃밭을 중시하는 협량의 정치판에서 신선한 충격이고 강렬한 변화의 열망. 들뢰즈가 말한 ‘의미 있는 사건’의 시작이 아닌가 싶다.

정치가는 특유의 스토리가 중요하다. 지나온 발자취를 통해서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의 튀는 언행은 이목을 끌려는 동기인지도 모른다. 그럴싸하게 포장은 할지라도 말이다.

보수 정당의 아웃사이더이자 마이너리티인 이정현 대표의 등장은 일대 사건이다. 그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주원장이자 장그래가 아닐까. ‘보잘 것 없는 근본’을 격정적으로 토로한 이 시대의 흙수저이자, 학벌과 경력의 천장을 깨부순 개룡남. 다양한 분야에서 제이 제삼의 이정현을 대망한다.

비천한 신분으로 황제가 된 주원장은 그 열등감으로 인해서 적잖은 문제를 일으켰다. 새로운 여망은 고사하고 공포정치로 외로운 평생을 살았다. 신하들의 사소한 잘못에도 가혹했고 문자옥으로 언로를 막았다. 정치계 밑바닥의 생생한 체험을 간직한 이 대표가 반면교사로 삼고 국가 개혁의 밀알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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