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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적장애를 가진 참가자(왼쪽)와 가이드가 결승점을 향해 막판 스퍼트를 하고 있다.윤관식 기자
‘정상적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늦고,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없을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좀 더 선진화되고 성숙해 지려면 우리 가슴에 새겨진 마음의 문부터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8일 오전 9시 30분 포항을 상징하는 영일대 해수욕장 백사장에 거센 파도를 헤치고 헤엄쳐 나오는 청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윤성필(23).

현재 경주대 실용음악과 3년에 재학중인 그는 이날 경북일보가 신해양시대를 맞아 영일만을 거쳐 세계로 뻗어 나가는 기상을 세우기 위해 마련한 제1회 영일만 장거리 바다수영대회 1.5㎞부에 선수로 출전했다.

제주가 고향인 그는 지적장애의 하나인 자폐2급 장애인이지만 아버지 윤장원씨(58)가 일찌감치 수영을 가르친 덕에 누구 못지 않은 수영 실력을 길러왔다.

처음부터 쉬운 것은 아니었다.

물도 무서워했지만 일반인에 비해 배움의 속도가 떨어지는 터라 그야말로 인고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10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으니 벌써 수영 경력만 13년째인 그는 181㎝·85㎏의 건장한 체구를 자랑하는 청년으로 자랐고, 그동안 자신에게 수영을 가르쳐 줬던 오규택씨(58)로부터 또 다른 도전에 나서볼 것을 권유받았다.

접영 10㎞ 한국기록 보유자이기도 한 오씨는 10년 전 윤성필에게 수영을 가르치던 윤장원씨를 만난 뒤 그동안 늘 든든한 후원자가 돼 왔다.

제주도에 사는 오씨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윤성필에게 바다수영을 다시 가르쳤다.

“처음엔 저도 걱정을 많이 했는데 바다에 뛰어든 성필이가 마치 정글 속의 타잔처럼 물속을 누비는 모습을 보고 ‘장애도 자연 속에 동화되면 자유로워 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불과 몇 달 전의 윤성필을 되돌아 봤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전국에서 펼쳐지고 있는 바다수영대회에 출전신청을 했지만 ‘자폐아’라는 이유로 거부당하거나 가이드 없이 출전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번 대회서도 이를 두고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오씨가 기꺼이 가이드 역할을 해 주겠다며 제주도에서 날아오면서 출전이 이뤄졌다.

이들은 대회 출발신호가 울리자 두 손을 꼭 잡고 강한 바람과 2m를 넘나드는 파도를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고, 아버지 윤장원씨는 긴 시간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다를 지켜봤다.

아버지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1등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성필이는 40여 분만에 오규택씨와 함께 거센 파도를 타고 넘으며 당당하게 골인 점으로 들어왔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완주메달을 받은 뒤 옷을 갈아 입었던 윤성필은 뭔가 아쉬움이 남았던 듯 간단한 요기를 한 뒤 다시 영일만 바다로 나가 자신의 몸을 맡겼다.

하지만 윤성필은 수영선수로 보다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더 유명하다.

14살 때부터 기타를 잡기 시작한 윤성필은 비록 더디긴 했지만 기타의 음률에 빠져들었고, 제주 한라대에서 기타를 전공한 뒤 더 많은 공부를 위해 지난해 경주대 실용음악과 3학년에 편입했다.

그리고 지난 4월 2일 세계 자폐인의 날을 맞아 삼성라이온즈에서 애국가 연주를 요청했고, 2만4천여 만원 관중 앞에서 감동의 연주를 펼쳤다.

이날 경기장을 찾았던 야구팬들은 윤성필의 연주에 기립박수를 보내며 그의 아름다운 도전에 경의를 표했고, 이후 그의 연주를 요청하는 곳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아버지 윤장원씨의 소원은 성필이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에게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다가와 주는 것이다.

‘성필이는 제가 해 줄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교육한 덕분에 이만큼이라도 됐지만 다른 지적장애인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성필의 도전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적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들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고 다가서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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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욱 기자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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