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섭.jpg
▲ 윤용섭 삼국유사목판사업본부장
22일부터 방영된 KBS의 ‘구르미 그린 달빛’이 첫 회부터 많은 관심을 끌었다 한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조선왕조 제23대 순조(純祖)의 아들인 효명세자(孝明世子) 이영이다. 효명세자는 3년 3개월간이라는 짧은 기간 국왕을 대신하여 직접 정치를 하였지만, 당대나 후세의 뜻있는 이들로 하여금 두고두고 아쉬워하게 했던 희망의 불빛이었다. 1809년 출생한 효명세자는 순조의 배려로 1827년부터 대리청정을 하였는데, 노론(老論)의 독주와 병폐를 시정하려던 정조(正祖)의 꿈이 좌절되고 20여 년이 지난 때였다.

정조를 이은 순조는 불과 11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므로 자연히 외가인 안동김씨가 정치를 좌우하였고 삼정문란 등 관료들의 극심한 부패와 홍경래의 난까지 겹치어 국가의 기강은 문란하고 백성의 삶은 피폐했다. 이에 총명하고 과단성 있는 세자를 얻은 순조가, 세자가 19세 되자마자 인사권을 포함한 대부분의 정무(政務)를 위임하여 아들로 하여금 국정을 쇄신하게 하였던 것이다. 순조로서는 최선의 방책이요 모험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때 효명세자가 행한 정치가 바로 예악정치(禮樂政治)다. 물론 세도정치를 꺾고 백성들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인사정책과 형사정책 등도 시행하였지만, 그 중심철학은 예악정치였다.

예악정치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큰 방책이 예악이라는 것인데 유교 정치의 표준이요 특징이다. 한나라의 가의(賈誼)가 유교를 ‘인의예악지도(仁義禮樂之道)’라고 설파하였듯이 유교는 인의(仁義)를 도덕·윤리로 삼고 예악(禮樂)을 문물제도로 삼는 사상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춘추시대의 개혁과 이상 사회실현을 위해 평생을 애쓰신 공자는 일찍이, “시(詩)에서 일으키고 예(禮)에서 세우며 악(樂)에서 완성한다”고 주창했는데, 이것이 바로 예악정치의 취지다. 한 나라를 진작시키려면 제일 먼저 좋은 시를 가르치고 보급하여 국민이 누구나 시를 노래하고 그 뜻을 음미하게 한다(옛날에는 시는 곧 노래였다) 다음은 예의를 알게 하여 사람들 사이에 질서와 존중심이 자리하게 한다. 끝으로 음악을 진흥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평화롭고 서로 화합하게 한다. 음악에는 정음(正音)과 익음(溺音)이 있는데, 정음은 편안하고 아름답고 씩씩하며, 익음은 방탕하거나 조급하거나 애잔하다. 유교에서 표방하는 음악은 당연히 정음 또는 정악(正樂)이다. 그런데 유교의 음악론에 의하면 음악에는 무용이 포함된다.

예악정치는 공자의 이상(理想)이다. 중국에서도 극소수의 군주가 이를 행하여 성군(聖君)의 칭송을 들었다. 세종대왕은 예악정치를 구현하기 위해 ‘오례의(五禮儀)’를 정비하고 직접 보태평, 정대업, 여민락, 봉래의 등의 명곡을 작곡하였다. 그러나 무용은 미흡하였는데 효명세자가 춘앵무 등 많은 무용을 창제하여 세종의 유업을 계승하였다. 지금도 남아있는 ‘기축진찬의(己丑進饌儀軌)’를 보면 효명세자가 얼마나 진지하게 세종의 이상을 실현하는 예악정치에 힘썼는가를 알 수 있다.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는 예의와 염치가 땅에 떨어졌고 후의(厚誼)와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다. 무미건조한 비윤리 국가로 전락한 한국의 국민 모두, 예악(禮樂)에 담긴 세종과 효명의 깊은 뜻을 음미하였으면 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