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선 경북도의원
부채 속 그림을 보고 있다. 너른 바위를 뚫고 올라온 소나무는 비스듬히 기울었으나 가지가 힘차게 뻗었고 잎이 무성하다. 그림 속의 고고한 선비(高士)는 소나무를 짚고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림의 왼쪽 아래에 ‘삼용추폭하 유연견남산(三龍湫瀑下 悠然見南山)/ 삼용추폭포 아래서 멀리 남산을 본다’라는 화제가 써졌다. 도연명의 시 ‘음주’ 중 ‘동쪽 울타리 아래서 국화를 따며 멀리 남산을 바라본다’ 싯구를 차용했다.

그림은 겸재 정선의 ‘고사의송관란도’이다. 그림 속 너른 바위는 내연산 비하대이고 화제에 언급된 ‘삼용추폭’은 내연산 연산폭포와 관음폭포, 잠룡폭포다. 소나무를 짚고 서 있는 고사는 도연명으로 추정한다. 1733년부터 1735년까지 청하현감을 지냈던 겸재는 조선의 금수강산이 그의 붓끝에서 비로소 완성됐다고 평가받는 조선의 화성이다. 그는 2년 채 안 되는 부임 기간 각기 다른 내연삼용추 2점(호암미술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과 ‘청하내연산폭포도’, 앞에 언급한 ‘고사의송관란도’ 등 네 점의 내연산 그림을 그렸다. 이 그림들로 인해 내연산이 진경산수화의 발현지가 됐다. 한마디로 내연산은 조선 산수화와의 성지인 것이다.

내연산은 겸재가 오기 오래전부터 조선의 명산으로 꼽혔다. 황여일이 1587년 내연산을 유산한 뒤 ‘유내영산록’을 썼고 조선의 명산을 다 돌아봤다는 정시한이 ‘산중일기’에 내연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기록하면서 내연산은 조선의 숨겨진 비경으로 선비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내연산과 12 폭포를 보기 위해 조선의 명사들이 앞다퉈 산을 찾았고 흔적을 남기기 위해 돌에 이름을 새겼다. 추사 김정희의 아버지인 김노경, 대산 이상정, 겸재 정선 등 400여 명에 이른다. 그들은 모두 내연산이라는 거대한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고 그 감동을 글로 시로 그림으로 남겼다.

그런데 이 아름답고 유선 깊은 내연산이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내연산에는 향로봉·천령산 등 아름다운 산봉이 7개소, 협암·불암 등 기암괴석이 5개소, 기화대·비하대·학소대 등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수직 절벽이 5개소가 있다. 또 고금을 막론하고 감탄사를 연발케 하는 연산폭포 등 12폭포가 있다. 또 천년사찰 보경사와 보경사내 문화재가 즐비하다.

구미 금오산, 문경의 새재, 봉화의 청량산, 팔공산 등 4개의 경북도립공원과 비교해봐도 어디 하나 손색이 없다.

4개의 도립공원에 투입되는 예산이 한해에 올해 기준 53억여 원이다. 평균 10억 원이 넘는 예산이다. 이처럼 적잖은 도비가 투입되면서 도립공원을 찾는 등산객의 수가 크게 늘어 금오산의 경우 지난해에만 477만여 명이 찾았으며 팔공산에도 340만 명이 찾아왔다고 한다.

내연산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예산이 투입돼 등산 편의시설 등이 보강되면 ‘대박’은 자명한 일이다. 현재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내연산을 하루빨리 도립공원으로 승격 지정해야 한다. 도시마케팅도 중요한 문제지만 이건 포항시민의 자존심에 관한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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