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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 중의 하나가 상상(imagination)입니다. 우리가 외계와 내면을 연결하는데 주로 사용하는 것은 지각(知覺)과 상상(想像)입니다(특별한 경우 직관도 사용합니다). 감각기관을 통해서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지각이라면 그것들을 활용해서 자체적으로 새로운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상상입니다. 인류의 창의적인 발명품들은 대체로 상상작용의 소산입니다. 그러니, 상상 없는 인생은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 오아시스 없는 사막입니다. 제 경우를 생각해 보면 나이가 들수록 상상의 힘이 점점 약해집니다. 그만큼 제 인생에 ‘앙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상상이 고갈되니 명색이 소설가인데도 제대로 된 단편 하나 쓰기가 힘듭니다. 고작 한다는 일이 미주알고주알 시골 늙은이의 ‘외면일기(外面日記)’나 페이스북에 싣는 정도입니다. 활발한 상상을 요구하는 내면의 기록 같은 것은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 다닐 때가 가장 상상작용이 왕성했습니다. 한시도 상상을 멈춘 적이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받을 때나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나 늘 황당한 공상(空想)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주로 만화적 상상력이었습니다. 순간 이동. 신분 상승, 변신(變身)과 괴력(怪力), 황홀한 연애까지, 온갖 터무니없는 스토리텔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뇌 기능에 약간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심했습니다. 당연히 집중해야 하는 학업이나 작업에는 성공할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 성적은 내내 지지부진했고, 한 번은 학교 악대부로 차출되어 하모니카를 불어야 했었는데 끝내 소리를 내지 못하고 그만둔 일도 있었습니다. 그 시절 학업에 집중했던 적은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중학교 입시를 한 달 정도 남겨두고 전력을 다해 공부했습니다. 사정상 1년 공부를 한 달 만에 끝내야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하면 제 인생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뒤로 공상이 주업(主業)에서 물러나 취미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은 다름 아닌 그 비정상적인 상상작용이었습니다. 전공으로 문학을 선택하고, 교단에 서고, 작가가 된 것도 그 개과천선한 공상들의 덕이었습니다.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상상작용인데, 그것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조급한 것이 있고 농익은 것이 있습니다. ‘조급한 것’들은 어디서나 늘 문제입니다. 해서는 안 될 말과 일들을 그냥 저지릅니다. 자기를 필요 이상으로 확대해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이 그들의 주특기입니다. 이들 자애증 환자들이 힘을 가지면 공동체는 큰 타격을 받습니다. 그와 반대로, ‘농익은 것’들은 번지는 일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그런 상상에 익숙한 사람들은 연대하는 일에 관심이 깊고 용서와 희생을 존중합니다. 자나 깨나 ‘타자공동체’를 만들어 갈 생각에 골몰합니다. 걱정되는 것은 현재의 우리 공동체 상황이 ‘농익은 것’보다는 ‘조급한 것’에 의해서 주도되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입니다. 아울러서 세대 간, 계층 간의 ‘상상의 간극’도 꽤나 많이 벌어져 있습니다. 모두들 자기 것 이외에는 아예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거대한 하나의 에로스’가 우리를 감싸는 타자공동체를 꿈꿀 수가 없습니다. 상상의 힘이 베풀 수 있는 삶의 개선도 더 이상 기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즈음 나라 안팎이 시끌시끌합니다. 싸드 배치니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이니 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도 요동치고 있고 대선을 앞둔 각 정파 간의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고, 부디 농익은 상상의 힘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시절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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