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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실마을 전경
풍수지리 전문 기자인 이규원이 쓴 책 ‘대한민국 명당’에서 사람의 흥망성쇠는 터에 따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터가 중요한데 그 책에서 선비의 고장은 따로 있다고 했다.

문필봉에 연적봉이 있어 선비의 기가 느껴지는 그런 명당이 바로 이 마을인데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조지훈의 고향 영양군 일월면 주실 마을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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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 소개된 주실 마을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영양 주실 마을을 아주 인상에 남는 마을로 “와 이런 동네도 있었네!”라고 소개했다.

책 내용에서 주실 마을로 말할 것 같으면 한 마을에서 인물 많이 나오기로 여기만 한 곳이 없을 정도며, 동자 돌림만 해도 조동탁(조지훈 시인 고려대), 조동걸(국민대 역사학), 조동일(서울대 국문학), 조동원(성균관대 역사학), 조동택(경북대 미생물), 조동욱(대구대), 조동성(인하대) 등이 꼽힌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조성환, 조석연, 조석준, 조형석 등 유명대 교수들이 끝없이 손꼽히며, 이들 모두 이 곳 주실 출신으로 1995년 전 공군참모 총장으로 헬기 사고로 타계한 조근해 대장도 이곳 출신이다. 고려대 원장을 지낸 조운해 박사도 여기 출신으로 “내가 미처 알지 못한 인물들이 하나 둘 있겠느냐?”고 이 캄캄한 산골 고추 밖에 알려진 것이 없는 영양 산골에 이런 문향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못해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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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실 마을 유래와 풍수지리학적 의미

주실 마을은 1630년 이전에는 주씨(朱氏)가 살았으나 1519년 조광조의 기묘사화를 만나 멸문 위기에 처해 전국 각지로 흩어졌는데 그중 호은공 조전 선생이 인조 7년(1629)년 이 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와 정착한 뒤 이곳에 집성촌을 이뤘다.

호은종택이 자리 잡은 지맥은 영양 지방의 명산인 일월산에서 흘러 내려 온 맥으로 주실에서 일월산까지 능선을 타면 12km 정도 거리로 주실에 도달한 지맥은 야트막한 3개의 봉우리로 응결되는데 그 가운데 봉우리 밑 부분에 호은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호은종택에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이 집터를 잡을 때의 일화가 흥미롭다. 호은공이 매방산에 올라가 매를 날려 매가 날아가다가 앉은 자리에 집터를 잡았다는 일화가 있다. 호은종택의 대문을 등지고 정면을 바라보면 아주 인상적인 봉우리 하나가 있다. 바로 문필봉로 홍림산이라고 불리는 이 봉우리가 호은종택의 안산에 해당 된다.

삼각형 모양의 산은 오행으로 따지면 목형의 산으로 풍수가에서는 문필봉이 정면에 있으면 공부 잘하는 학자가 많이 나오며, 문필봉이 안산으로 자리 잡고 있는 지역에서 장기간 거주하면 그 기운을 받아 사람도 역시 문필가나 학자가 된다고 믿었다.

이를 뒤받침 하듯 경북의 영산 일월산의 지맥을 이어받아 절묘하게 들어앉은 주실은 14명의 박사를 배출하는 등 문인·학자를 많이 배출한 마을로도 유명하다.

370여 년을 지켜 내려온 호은종택에서 조지훈이 태어났고, 호은종택 바로 뒤에 있던 집에서 조동걸 교수, 그 오른쪽 편에 있는 집에서 조동원 교수, 문필봉의 붓끝 모양이 선명하게 바라다 보이는 노계고택에서 조동일 교수가 태어났다.

우연으로 돌리기에는,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의 한낱 말거리로 보아 넘기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그 무엇이 분명히 마을에 있어 보인다.

풍수지리에 대한 주실 마을 사람들의 믿음도 남다르다.

40여 년의 공무원 생활을 퇴직하고 마을을 지키고 있는 조석관(67)씨는 옛날부터 마을 전체를 통틀어 우물이 오직 하나뿐인데 주실이 배 모양의 지형이라 우물을 파면 배가 침몰 할 것이며 인물이 안 나온다고 생각해 우물이 하나 밖에 없는 것도 특징이라고 말한다.

여기다 마을 입구에 조성돼 있는 숲이 ‘2008년도 올해 아름다운 숲’에 선정됐다. 이 마을 숲은 전형적인 비보림이자 수구막이 숲으로 수령 100년의 소나무와 250여 년의 아름드리 느티나무, 느릅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풍수상 단점을 보완하고 있다고 했다.

마을 숲에는 지훈 선생과 그의 형 조동진의 시비가 있어 ‘시인의 숲’이라 불리며 지난 2007년 지훈문학관 개관 이후 매년 5월이면 지훈 선생을 기리기 위한 백일장 등 지훈 예술제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등 매년 수만 명의 문학도들이 찾는 문학의 마을이기도 하다고 자랑했다.

현재 60여 가구가 남아 주로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있지만 1899년 이 일대에서 개화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 들여 지금도 자식들에 대한 교육열은 전국 최고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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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실 조 씨 집안이 배출한 인물들

주실 마을을 얘기하면 조지훈을 빼놓곤 말 할 수 없다.

대한민국 대표 문학가인 조지훈은 청록파 3인 중 한사람으로 승무, 봉황수(鳳凰愁) 등의 대표적인 시가 있고 민족적 전통이 담긴 시작과 지조론 등의 평론을 남겼다.

요즘 시대에야 함부로 인문학을 전공했다간 자칫 쪽박 차기 쉽지만, ‘인문학이 죽으면 그 나라의 주체성도 죽는다’는 신념과 각오로 한국 인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조동일, 조동걸, 조동원 박사가 이 마을 출신이다.

전 서울대 국문학과의 조동일 교수는 한국문학 전체를 삼국시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통시적으로 정리한 ‘한국문학통사’(6권)를 지었으며, 국민대 명예교수로 있는 조동걸 교수는 고려대의 강만길 교수와 함께 근세사의 양대 고수로 꼽힌다.

성균관대 부총장을 지낸 조동원 교수는 한국의 금석문 탁본을 20년에 걸쳐 정리한 ‘학국금석문대계(7권)’의 저자로 남한 전 지역의 비석에 새겨진 금석문을 집대성 했다.

조지훈의 아버지인 조헌영은 한국 한의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재헌의회 의원을 지냈으며, 숙부인 조은영은 국립도서관장, 조준영은 초대 민선대구시장과 경북도 지사, 고모인 조애영은 유명한 여류 시조시인이다.

이 밖에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의 맏사위이기도 한 조운해 전 고려병원(현 삼성 강북병원)재단 이사장, 1993년 제22대 공군참모총장으로 활약하다. 1994년 헬기 추락 사고로 부인과 함께 순직한 조근해 전 공군참모 총장, 전 농업기술과학원장을 역임한 조은기 원장, 조지훈 시인의 삼남인 외교부 조태열 차관, 한솔그룹 조동길 회장 등이 모두 이 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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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성균관 부총재 조동원 교수 인터뷰.

“주실 마을은 내가 태어나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곳으로 오늘날 내가 있기까지는 고향 마을의 선비 정신과 높은 교육열 덕택이었다”

주실 마을이 배출한 한국 인문학의 대가 중 한 사람의 꼽히는 조동원 교수.

조교수는 ‘주실 마을’이란 말에 부모님의 산소가 고향을 지키고 있으며, 언젠가는 나도 돌아가야 할 곳으로 말만 들어도 설렘과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주실 마을은 1900년대 일찍 개화 문물을 받아들인 덕에 신교육에 대해 빨리 눈을 뜰 수 있었고, 1950~60년대 여느 농촌 마을이 다 그러하듯이 먹고 살기에 빠듯했지만 교육열만큼은 어느 곳 보다 높았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1960년대 당시 먹고 살기가 힘들어 다른 마을 또래들은 학교 대신 집안일을 도왔으나 주실 마을 아이들은 국민학교(현 초등학교)입학 전 마을 서당을 통해 천자문과 동몽선습을 익혔으며, 입학 후 매일 주실 마을과 10리(4㎞) 떨어진 학교까지 걸어 다닌 유년 시절 힘들었던 일들을 회고했다.

또 부모들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자신들은 굶더라도 읍내에 있는 중고등학교나 대도시에 유학을 보내는 등 헌식적 희생과 높은 교육열이 있었기에 주실 마을이 많은 인재를 배출하게 됐다고 했다.

어릴 적 집안 친척 형님뻘인 조지훈 선생과 자주 만나면서 인생의 멘토로 삼아 인문학자로서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형기 기자
정형기 jeonghk@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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