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시대(지구의 나이)를 연대로 구분할 때 대(代)-기(紀)-세(世)-절(節)로 나눈다. 이 때 기(紀)를 세분한 단위가 세(世)다. 현재는 신생대(代) 4기(紀) 중 충적세(世)다. 이 충적세에 이어 새로운 시대 구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지난 2000년 처음 제기됐다. 네덜란드의 화학자로 1995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폴 크루첸의 제안이었다. 시대 순으로 따져 신생대 4기의 홍적세(洪積世)와 지질시대 최후의 시대이자 현세인 충적세(沖積世)에 이은 전혀 새로운 시대로 인류세(人類世)를 두자는 주장이었다.

이 같은 제안이 있은 지 16년 만에 35명의 과학자로 구성된 국제연구팀 인류세(Anthropocene) 워킹그룹(AWG)이 플라스틱과 새로운 금속, 콘크리트 등의 전 지구적 확산과 인간에 의한 기후 변화와 함께 지구가 새로운 지질시대인 이른바 ‘인류세’에 들어섰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질시대인 현세가 1만1천700년 전 시작된 이래 인간 활동이 지구에 가시적 흔적들을 남겼지만 최근 일어난 지구의 변화는 인간 지배를 특징으로 하는 새로운 지질시대 ‘인류세’ 채택을 정당화하기에 충분할 만큼 동시적이고 지대하다는 주장이다.

지질시대에는 각 시대를 구분하는 중대한 계기의 ‘골든 스파이크’가 있다. AWG은 1만2천년 전 시작된 현세와 인류세를 가르는 가장 대표적 골든 스파이크 후보로 1940년대 후반의 원자폭탄실험을 들었다. 원폭실험으로 방사성 물질이 성층권까지 도달했다가 지구로 떨어졌다. 이와 함께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발전소에서 배출되는 탄소, 알루미늄 역시 유력 골든 스파이크 후보들로 들었다.

플라스틱은 2차대전 이후 만들어진 양을 랩으로 만들면 지구를 완전히 둘러싸고도 남을 만큼의 양으로 지구환경을 완전히 바꿔 놓은 물질이다. 얀 잘라시에비치 영국 레스터대 교수는 “바다 물고기들이 플라스틱을 먹이인 줄 알고 새끼들에게 물어다 주고, 배설물들이 해저에 가라앉아 지구가 천천히 플라스틱으로 덮여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인류세는 인류에 의한 환경훼손의 대가를 치러야 하는 현재의, 현재 이후의 세대를 가리키는 재앙의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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