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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작품 ‘그리스인 조르바(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 속의 조르바는 소설 속의 인물이지만 완전히 허구적인 인물이 아니라 작가가 실제로 만난 중년의 그리스인(더 정확히는 크레타인)을 묘사한 것이다. 작가는 자기 영혼에 깊은 영향을 준 사람으로 호메로스, 붓다, 니체, 베르그송과 함께 조르바를 꼽고 있을 정도이다.

조르바의 왼쪽 집게손가락은 반 이상 잘려나가 있었다. 그는 크레타로 가는 배 안에서 ‘기계를 만지다가 잘렸냐’는 질문을 받는다. 한때 도자기를 만드는 일에 미쳐 있던 조르바는 녹로(轆轤)를 돌리는데 걸리적거린다는 이유로 자기 손으로 손가락을 자른 것이라고 말한다. 손가락은 되도록 다섯 개 다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뒤집어엎는 사람, 전복(顚覆)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 바로 조르바였다. 그래서 조르바의 잘려진 손가락은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고 적힌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과 함께 “한 인간의 진정한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Luiz Inácio Lula da Silva)는 직전 브라질 대통령으로 우리가 흔히 “룰라”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한 그가 기술자인 ‘선반공’이 되었을 때 그의 가족들은 마치 그가 과학자가 된 것처럼 좋아하였다고 한다. 그의 왼손 새끼손가락은 ‘기계를 만지다가’ (산업재해로) 잘려나갔다. 그리고 그는 실업자가 되었다. 그런 그가 대통령선거에 나섰을 때 조지 소로스는 “룰라로 인하여 브라질은 아르헨티나와 같이 국가부도사태를 맞을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는 일종의 기본소득제도라고 할 수 있는 볼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정책을 시행하였다. 그는 해당 가구 자녀의 학교 결석률이 15% 미만인 가구만이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03년 350만 가구가 혜택을 받던 것에서 시작하여 2010년 1,280만으로 수혜가구로 늘었다. 브라질 인구의 4분의 1이 위 제도의 수혜자가 된 것이었다. 그는 “왜 부자들을 돕는 것은 ‘투자’라고 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비용’이라고만 말하는가”라고 외쳤다. 실제로 룰라 당선 직후에는 다국적기업이 떠나는 등 국가 경제에 위기가 있었지만 룰라의 정책으로 극빈층을 중산층으로 서서히 끌어올린 덕분에 소비가 살아나고 기업이 활기를 되찾게 되었고 결국 룰라는 집권 8년 동안 국가 부채를 모두 변제할 수 있었으며 브라질은 세계 8위의 경제 대국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모든 정책의 최우선이다.”라고 말하던 룰라의 왼쪽 새끼손가락은 그래서 “희망”을 갖는 것의 소중함에 대하여 깊은 감동을 준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하여 기꺼이 자기 손으로 집게손가락을 자른 조르바를 통하여 진정한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고, 가난 때문에 손가락을 잃었던 룰라가 가난과 무학(無學)을 딛고 드디어 대통령이 되어 브라질 빈민 2,000만 명을 중산층으로 끌어올린 모습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꿈꾸게 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대한 공방이 뜨거운 요즘이다. 청와대와 특정 언론, 여당과 야당이 서로 물타기를 하는 것이라고 상대방을 비방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듣던 중 가장 낯 뜨거운 손가락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능엄경(楞嚴經) 일부를 인용한다. 如人以手指月示人 彼人因指當應看月 若復觀指以爲月體 此人豈唯亡失月輪 亦亡其脂 “누가 손으로 달을 가리켜 다른 이에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손가락을 따라 의당 달을 쳐다보아야 한다. 만약 그가 손가락을 본 후 이를 달의 본체로 여긴다면 그 사람이 어찌 둥근 달만 잃어버리겠는가? 손가락 또한 잃어버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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