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칠불(乾漆佛)은 옻칠을 바탕이 되는 삼베나 종이 위에 여러 번 두껍게 바른 뒤 건조 시켜 만든 불상을 말한다. 건칠불을 만드는 기술은 중국에서 처음 시작돼 우리나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중국에서는 당나라 시대 후기인 9세기 이후에 처음 등장하지만 값비싼 칠이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조상(彫像)의 재료로 널리 이용되지는 못했다. 일본에서는 덴표(天平) 시대,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건칠불이 주로 제작됐다.

일본에서는 건칠불이 여럿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상제작에 크게 선호되지 않아 현존하는 작품 수가 많지 않다. 건칠불은 나무나 돌 등 다른 재료에 비해 불상을 만들기 쉽고, 가벼워서 관리하기도 편하다. 또한 재질이 다루기 쉽기 때문에 정교하고 세밀한 표현을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경북에는 유명한 건칠불이 제법 있다. 경주 기림사 성보박물관에 보물 제415호로 지정된 건칠관음보살상이 있다. 연산군 7년(1501)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는 이 불상은 금빛으로 번쩍이지만 속은 옻칠을 해서 만든 건칠불이다. 영덕군 장륙사에도 건칠보살반가상이 있다. 이 불상도 보물 제993호로 지정됐다. 태조 4년(1395)에 지역관리들과 지역민의 시주로 만들어져 태종 8년(1407)에 다시 금칠을 한 것으로 불상 안에서 발견된 문서에서 확인됐다.

또 다른 건칠불인 봉화 청량사 건칠약사여래좌상이 있다. 이 불상은 지난 2009년 이후 7년간 문화재적 가치를 두고 의견이 분분해 ‘비운의 불상’으로도 불린다. 미국의 베타연구소가 이 불상의 안쪽 목 부분에서 채취한 직물의 절대연대를 분석해 보았더니 770~870년으로 추정됐다. 또 청량사가 같은 연구소에 다른 시료로 조사를 의뢰해 보았더니 제작 시기가 885~965년 이라는 결과였다. 연대 측정 결과로 보면 합천 해인사의 93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칠희랑대사좌상(보물 제999호)과 비슷한 시기다. 문화재청이 지난 8월 30일 청량사 불상의 직물 절대연대 분석 결과 8∼9세기로 추정된다며 보물지정을 예고 했다. 이렇게 보면 청량사 불상이 우리나라 건칠불의 시원에 가까운 것으로 조각사적 의미가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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