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庭前小草挾風薰 (정전소초협풍훈·뜰 앞의 잔풀들은 바람길에 향기롭고)
殘夢初醒午酒醺 (잔몽초성오주훈·어렴풋 꿈이 깨어 낮술에 취하노라)
深院落花春晝永 (심원락화춘주영·고요한 집에 꽃은 지고 봄낮은 길어)
隔簾蜂蝶晩紛紛 (격렴봉접만분분·발 밖에는 벌과 나비 어지러이 날으네)

고봉(高峯) 기대승은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부정자, 이조정랑, 대사성 등을 지낸 조선 선조 때의 성리학자이다. 호남인이지만 퇴계의 문인이되었고, 퇴계와 그 유명한 사단칠정논쟁을 벌여 그 체계를 이루었으며, 정몽주에서 김종직을 거쳐 조광조로 이어지는 학통을 계승했다. 기묘사화로 죽은 조광조에 대한 추증을 건의하는 등 절의가 있었다.

그는 조광조의 지치주의(至治主義)이념에 의한 왕도 정치를 주장했으며 이를 위해서는 현자(賢者)가 필요한데, 이는 임금이 현자를 지성으로 신임해야 가능하다며 신하의 임금에 대한 예는 물론 임금의 신하에 대한 예도 또한 요구했다.

정조는 “고봉은 호남 인사 중 가장 걸출한 사람이다. 학문의 높은 조예(高詣), 문장의 탁월함(超邁)및 절의의 정대(正大)함은 가히 삼절(三絶)이라 할 만하다. 퇴계가 많은 부분에서 자기의 의견을 굽히고 그의 견해를 따르면서 ‘홀로 환하고 광대한 근원을 본 사람(獨觀昭曠之源)’이라고 칭찬했다”고했다(‘일득록日得錄’). 허균은 시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藁)’에서 “고봉은 호남의 인사 중 걸출한 사람이다. 공이 일찍이 ‘호남 선비들의 풍속과 기습이 점차 해이해지고 있어 만약 수십 년이 지나고 나면 과거에 합격하는 자가 많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湖南士子 風聲氣習 漸至陵夷 若過數十年 則幷與科第 而不多出矣). 라고 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공의 말이 증명된 것이다.


공은 이미 그 기미를 예견했던가 보다”라고 말하고 있어 고봉의 학문의 깊이와 예지력을 엿볼 수 있다.

김진태 전 검찰총장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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