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출판 동녘 '재난 불평등' 출간

2010년 1월 아이티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지진으로 20만 명 넘게 숨졌다. 같은해 2월 규모 8.8의 칠레 지진은 525명의 사망자를 냈다. 방출된 에너지는 칠레가 500배 컸지만 인명피해 규모는 정반대였다.

호주 출신 지진학자 존 C. 머터는 신간 ‘재난 불평등’에서 이런 극적인 차이의 근본 원인을 아이티의 가난과 부패에서 찾는다. 빈곤한 나라일수록 얼마 되지 않는 부를 권력자 주변의 부패세력이 독점한다. 자연재해에 대비하거나 사후 대처할 제도를 마련하기는 역부족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아이티라는 것이다. 정부가 나서 적극 부인하긴 했지만, 아이티는 건축 규정이 아예 없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받았다.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아이티는 전 세계에서 15번째로 부패한 나라다. 반면 칠레는 22번째로 깨끗한 국가로 꼽힌다. 칠레는 인구 대비 지진학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아이티는 나라 전체를 통틀어 지진학자가 단 1명이었다. 자연재해와 관련한 학문·제도적 인프라 역시 국가의 부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자연은 결과적으로 가난한 자들에게 더 가혹한 결과를 안긴다. 아이티 지진으로 숨진 이들은 대부분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슬럼가나 내륙의 빈농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니그’(neg)로 불리는 이들 하층민이 조악하게 지어올린 건축물은 무려 20만 채 넘게 주저앉았다. 반면 각종 사업을 벌이며 부를 독점한 ‘블랑’(blan) 계층의 고급 저택들은 별다른 피해가 없었다.

저자는 지진·태풍·쓰나미 등의 재해를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로 보는 관점에서 벗어나라고 말한다. 지진·태풍·쓰나미 등의 재해는 발생한 순간에는 자연과학의 영역이지만, 진동·강풍·해일이 멈춘 직후부터는 순전히 정치·사회적 문제로 넘어간다.

쓰나미 경보 체계가 갖춰졌더라면 2004년 인도양에서 밀어닥친 쓰나미가 23만 명이라는 기록적인 사망자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시 하와이에 있는 태평양 쓰나미 경보센터가 해일 가능성을 감지했지만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등지의 해안 주민들에게까지 전달되지는 못했다.

자연재해는 수습과정에서 부의 편중을 심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건물을 새로 짓고 도로를 복구하는 데 들어간 비용은 결국 자본의 이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이후 군납업체 ‘켈로그 브라운 앤 루트’(KBR)가 수백만 달러짜리 재건사업을 수의계약으로 따냈다. 딕 체니 전 미국 부통령이 회장으로 재직했던 회사다.

결국 자연재해를 더욱 위력적으로 만드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병폐다. 저자는 부정의를 바로잡으려면 재해 자체보다 이후 장기간 이어지는 피해조사·복구 과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복구는 재건축한 건물의 숫자로는 제대로 측정할 수 없으며, 생활이 복구된 주민의 수로 살펴야 한다.”

동녘. 장상미 옮김. 330쪽. 1만6천800원.

남현정 기자
남현정 기자 nhj@kyongbuk.com

사회 2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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