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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한평생 글을 쓰면서 살아왔습니다만 글쓰기는 매번 새롭습니다. 오래된 벗이면서도 방심을 허용치 않습니다. 낯익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늘 조심스럽습니다. ‘생활의 달인’에서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을 누구나 할 수 없는 경지로 만들기가 쉽지 않은 것이 글쓰기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서점에는 항상 다양한 글쓰기 책이 넘칩니다. 이번에 저도 ‘글쓰기 연금술’이라는 책을 한 권 출판하면서 그쪽 독서시장이 아주 크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수백 수천의 다양한 책들이 글쓰기에 관심 있는 독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개중에는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 작가의 글쓰기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전문 작가가 되는데 필수적인 에피파니(epiphany·계시적인 영감)에서부터 직업적 체력 관리 요령에 이르기까지, 글쓰기 전문가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실천하고자 하는 필수 요목들이 요약 적으로 나열되고 있었습니다. 저도 평소에 ‘하고 싶었고,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이라 인상적인 것 몇 개만 골라 소개하겠습니다.

하루키는 열세 가지 요목을 말했습니다. 그중에서 네 개만 소개하겠습니다. 요약은 제 방식대로 했습니다. 첫째는 ‘부름’입니다. 글쓰기의 영(靈)이 나를 부르면 지체 없이 응답해야 합니다. 하루키는 아무도 없는 야구장의 관중석에서 혼자 앉아 있다가 문득 그 ‘부름’를 받았다고 적고 있습니다. “글을 써야겠다”,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아내와 안락한 일상을 누리던 스물아홉 살의 청년은 그날로 새로운 인생에 도전장을 던집니다. 그다음은 ‘방임(放任)’입니다.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느긋하게 쓰는 것 자체를 즐겨야 합니다. 저도 언젠가 그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모든 거장이 남긴 예술 작품은 술 찌꺼기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열락은 그것을 만드는 순간에만 존재합니다. 향수(享受)의 즐거움은 창조의 기쁨과는 아예 비교될 수조차 없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글을 쓸까? 어떤 문체를 만들어낼까? 내용을 구상하고 형식을 궁리하면서,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는 그 순간을 즐겨야 합니다. 그것 이외의 것에 한눈을 팔면 좋은(등급 높은) 글을 쓸 수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하루키가 강조하고 있는 것은 ‘몰입’입니다. 소설을 쓸 때는 소설만 생각해야 합니다. 에세이 집필이나 강연 같은 것은 일절 하지 않고 소설 쓰기에만 매진해야 합니다. 소설가들이 대학에 취직했다가 이내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것을 이따금 보곤 합니다. 모두 이 ‘몰입의 원칙’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잘 쓰던 시인이나 소설가도 대학교수만 되면 글줄이 막혀서 애를 먹습니다. 저같이 아예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고 이류, 삼류 글쓰기 인생의 수모를 용케 견디며 버티고 있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하루키가 마지막으로 강조하는 것은 ‘겸허(謙虛)’입니다. 더 이상 고칠 데가 없을 때까지 다듬어서 내야 하는 것이 프로의 글쓰긴데 퇴고 시에는 가차 없이 자존심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글쓰기 연금술’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반전이 가능하다면 앞에 쓴 것을 모두 다 뒤집어서라도 마지막 그 한 문장을 취해라’라고 썼습니다.

하루키의 글쓰기론은 전문 작가용이기 때문에 실용적 글쓰기나 교양인 글쓰기에는 다소 부합되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1급수든 3급수든 물은 다 같은 물입니다. 하루키의 글쓰기가 딱히 ‘1급수’여서 그를 인용한 것도 아닙니다. 글쓰기는 예나 제나 중한 일이고, 오늘도 어디에선가 ‘부름’을 받는 새로운 작가가 있을 것이기에 한 말씀 드리는 것일 뿐입니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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