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3억의 중국에는 56개 민족이 있다. 대한민국의 96배나 되는 땅에 사는 사람들이 쓰는 언어도 수십가지다. 하지만 문자 자체는 오직 한자 하나다. ‘총·균·쇠’의 저자 제럴드 다이아몬드는 “현대 유럽에서는 변형된 수십 가지 알파벳이 사용되고 있지만 중국의 경우는 문자가 처음 생긴 이후 오직 하나의 문자체계 밖에 없다”고 했다. 한자는 표의문자로 때론 그 뜻을 명확하게 알 수 없어서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중국인들은 ‘마음으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 말로는 전달할 수 없다(只可意會 不可言傳)’는 말을 흔히 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 저장성 항저우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자성어를 들어 일성을 열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당시 한국의 유명한 지도자 김구 선생께서 저장성에서 투쟁했고, 중국 국민은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장군께서 1996년에 저장성 옆에 있는 하이엔을 방문했을 때 ‘음수사원 한중우의(飮水思源 韓中友誼’라는 글자를 남겼다”라고 했다.

‘음수사원’은 중국 남북조시대 유신(庾信)이 멸망한 조국 양(梁)나라를 그리며 쓴 ‘징조곡’에서 비롯된 성어다. 음수사원은 ‘조국을 잊지 않는다’는 뜻이 있어서 김구 선생이 좌우명으로 삼았다. 흔히 ‘매사에 근원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한다’는 의미로 풀이하는 성어다. 시 주석이 김구 선생 부자의 음수사원 일화를 든 것은 은근히 한국의 항일 투쟁을 중국이 지원했는데 지금 사드로 적대시 하느냐는 해석이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시 주석이 중국이 한국의 뿌리라는 점을 드러낸 것이란 해석도 있다.

이 같은 분분한 해석에 대해 청와대측에서는 ‘한중간의 깊은 인연을 강조한 표현’이라 받아들였다. 박근혜 대통령도 시 주석의 말에 “중국과의 오래전 인연에 대해 감사하고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박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과 다르게 시 주석이 던진 ‘음수사원’은 외교적 결례에 가까운 사자성어 외교어법으로 볼 수도 있다. 시 주석의 저의는 어떻든 박 대통령이 ‘구동화이(求同化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이견이 있는 부분은 공감대를 넓히자)’로 받아 한중 간의 대화의 국면을 연 것은 큰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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