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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작은 마을에서 공중보건의로 일하는 의학박사는 온천개발을 주도한다. 그러던 중, 온천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오염 원인을 밝힌 후 온천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막대한 투자를 한 사람들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 들뜬 일반 지역주민들까지 박사의 계획에 반대한다.

마을 시장인 박사의 형은 박사를 다그쳐 최초 발표를 번복하라고 하지만 박사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처음엔 박사를 지지하는 듯하던 지역 언론은 그러다간 곧 망할 것이라는 협박을 받자 이내 태도를 바꾸어 버린다. 박사가 공청회까지 열어 온천 오염의 실상을 알리고 주민들을 설득하여 계획을 변경하려고 노력하지만, 개발이익을 얻으려는 지역 유력인사들과 이를 토대로 정치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인들은 언론과 합세하여, ‘공익적 주장’을 하는 박사를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는 악’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로 인하여 마을 주민들의 건강을 가장 우선시하려던 박사는 ‘민중의 적’이 돼 버렸다. 박사의 딸이 학교에서 해고되고 주민들이 던진 돌이 집으로 날아든다. 외항선을 타고 탈출하자는 친구(선장)의 권유를 받지만, 박사는 이를 뿌리치고 딸과 함께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 진리에 목마른 인간을 길러내는 학교를 열자’고 다짐한다. 이상은 ‘인형의 집’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노르웨이 작가 헨릭 입센(Henrik Ibsen)의 대표적인 희곡 중 하나인 ‘민중의 적(En Folkefiende)’의 줄거리다. 입센은 위 희곡을 통하여 “정치적 소수를 보호해야 하는 민주주의의 신념이 위기의 순간에도 지켜질 수 있는가”를 묻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신축 아파트 1층에 누수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제대로 적정한 보상을 해 주지 않아 이에 대하여 항의를 하였더니 오히려 대표회의 및 일부 주민으로부터 ‘아파트값 떨어지게 왜 이리 소란이냐’며 손가락질을 받았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위 희곡을 읽은 지 불과 며칠 후의 일이었다. 졸지에 주민들의 공적이 되어 버린 것 같다며 망연자실하던 그 주민을 위로하며 기꺼이 손해배상소송을 맡았다.

우리는, 특히 우리 대구 경북의 지역주민들은, 기지이전과 관련한 평택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 시골 마을에 군사기지를 만드는 것을 막으려던 제주 강정마을 사람들의 외침, 송전탑 추가 건설을 온몸으로 막던 밀양 할머니들의 함성, 원인을 규명해 달라는 세월호 가족들의 수년간의 절규에 대하여 너무 무관심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부세력 운운하면서 사드(THAAD)문제를 성주군만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하더니 이후 이른바 제3 부지에 대한 찬성과 반대로 다시 군민들을 분열시키려는 시도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러는 사이, 성주군민들 가운데서 “이제야 세월호 가족들의 마음을 알겠다.”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좀비들에 쫓겨 객실로 들어오려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 중에 이미 감염된 사람이 있을 것이니 출입문을 막아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던 중년의 남성이 떠오른다. 슬프게도 그것이 비현실적으로만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바로 지금, 바로 우리가 스스로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주민 건강을 먼저 앞세우다 민중의 적이 되어 버린 공중보건의의 호소, 공연히 시끄럽게 하여 아파트값을 떨어뜨린다는 비난과 함께 주민의 적이 되어 버린 입주민 한 사람의 외로운 소송, “사드는 그만두고 당장 북한과의 평화적 공존 및 통일을 위한 외교, 국방상의 노력을 다하라.”는 성주군민들의 간절한 촛불을 기억하자. 그들은 결코 우리의 적이 아니다. 그들을 우리의 친구로 맞이해야 한다. 닫힌 마음의 문을 열고 그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때가 바로 지금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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