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호순 병원장

우리 문화에서 장모의 사위 사랑은 각별합니다. 사위를 백 년 동안이나 귀하게 여기 고자 백년손님이라 부릅니다. 사위에게는 그 귀한 씨암탉도 기꺼이 잡아 주는 그런 무한 사랑을 베풉니다. 잘난 사위가 처가에 오면 장모는 연신 기분이 좋아서 어깨가 들썩거리고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 사위 자랑하기 바쁩니다. 예부터 장모와 사위의 관계는 딸이 질투할 정도의 관계입니다.

‘사위 질빵’이라는 덩굴을 이루면서 뻗어 나가는 식물이 있습니다. 그 식물은 줄기가 너무 연하고 잘 끊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어쩌다 일손이 귀할 때 사위도 불러다 일을 시킬 경우도 있겠지요(그것은 순전히 장인의 뜻이겠지만). 그런데 그 귀한 사위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픈 장모는 이 사위 질빵이라는 식물 줄기로 지게 질빵을 만들어서 사위에게 지게 했답니다. 그런데 이 질빵은 너무나 약하여 가벼운 짐을 지어도 툭 툭 잘 끊어질 수밖에요. 그때 장모는 다른 일꾼들에게 “봐라. 우리 사위 짐이 너무 무거워 질빵이 끊어질 정도이니, 아이고 불쌍타! 자네들이 짐을 좀 져주게”라고 했을 것이 분명 합니다. 참 재미있는 식물 이름입니다.

장모가 사위를 사랑하는 것은 분명 예로부터 내려오는 정서일 것입니다. 농경 사회에서 한 사람의 힘 좋은 일꾼에 대한 필요도 간절했을 것이고 남성 우월주의에서 반영된 젊고 잘생긴 남성에 대한 애틋한 정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을 듯합니다.

그런데 그 장모가 시어머니 역할이 되면 확 달라집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 얘기입니다. 그 오묘하고 복잡하고 갈등이 얽혀 있고 미워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며 사랑하는 관계. 바로 며느리와 시어머니 관계입니다. 옛 시골에는 하늘이 뻥 뚫린, 송판 두 쪽을 아슬아슬하게 걸친 변소가 있었습니다. 경상도에서는 이를 ‘정랑’이라 불렀습니다. 그 정랑 둘레로는 늘 큰 잎사귀를 가진 호박 넝쿨들이 지천으로 푸르렀습니다. 그 넓은 호박잎으로 밑씻개를 했으니까요. 문제는 그 호박잎의 뒷면으로 밑을 씻게 되면 큰일 납니다. 호박잎 뒷면의 가시 털이 그냥 얌전히 있지는 않겠지요.

잎이 세모꼴로 생겼으며 잎의 뒷면 잎맥 아래쪽에 작은 가시를 가진 덩굴성의 한해살이 풀 중에 ‘며느리 밑씻개’라는 재미있는 이름의 풀이 있습니다. 그 잎으로 밑을 씻는다면 아휴, 상상만 해도 쓰립니다. 미운 며느리를 혼내주고 싶은 시어머니가 그 풀을 한 아름 베어다가 재래식 화장실 한곳에다 호박 잎 대신 쌓아 둔다면, 급해서 앞뒤 구분 못 하는 며느리가 그 풀을 이용해서 쓰윽 밑을 씻는다면, 미운 며느리 혼내 주는 방법치고는 참 쓰리고 아픈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그래서 ‘며느리 밑씻개’ 라고 부른답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는 것은 아마 아들과의 관계에서의 질투도 있을 것입니다. 모계 사회에서 아들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모든 것보다 우선 하니까요. 이런 정서들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들이 아니고 우리 민족의 정서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전달되는 듯합니다. 심리학자 융(joung)이 말한 ‘집단 무의식’도 관련이 있을 듯합니다.

사위질빵과 며느리 밑씻개, 그냥 아무렇게나 이름 지워진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정서와 문화와 역사가 배여 있는 이름들입니다. 그 관계들에서 비롯되어 우울증도 생기고 홧증도 생기고 심하면 피해망상도 생기는 것입니다. 그 문화와 역사를 모르면 절대 알 수 없는 마음의 병이 바로 문화 관련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치료자도 역시 그 정서와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지 못하면 절대 치료 할 수 없는 마음의 병들이 바로 문화 관련 증후군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곽호순 병원장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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