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 진리속에서 공존하는 '풍류도' 한민족 정신 뿌리

단석산 정상의 단석

한민족공동체가 형성된 이래로 끊임없이 작동했고, 지금도 작동하고 있는 한민족의 기저사상이 무엇인지, 우리들의 의식 속에 살아 움직이는 사상 정체성이 무엇인가. 역사정체성을 논할 때 설명했듯이 단군조선의 역사정체성의 흐름은 신라로 계승되었다. 때문에 신라로 전해진 고유사상을 제대로 알면 우리의 사상 정체성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신라로 전해진 고유 사상은 ‘풍류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그렇다면 풍류도가 어떤 사상을 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한민족의 기저사상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최치원은 ‘난랑비서’에 풍류도를 간략하게 정리해 놓았다. ‘난랑비서’는 풍류도 연구의 가장 핵심적이 사료다. 때문에 풍류도를 연구하는 모든 학자들은 ‘난랑비서’의 내용을 분석하고 연구한다. 하지만 풍류도가 정확히 어떤 도인지에 대해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한 학자는 아직 없다.

어째서 그 많은 연구자들이 풍류도를 연구했는데도 풍류도의 실체에 접근할 수 없었을까? 그것은 풍류도에 관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풍류도를 계승해 왔던 조상들이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역사정체성이 제대로 파악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모든 문화는 그것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때문에 그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야 그들이 만든 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그 문화를 만든 사상적 배경도 알 수 있다.


‘난랑비서’를 보자. “나라에 현묘(玄妙)한 도가 있는데 이를 풍류라 한다. 가르침을 세운 근원은 ‘선사’에 자세히 실려 있거니와, 내용은 곧 삼교(三敎)를 본디부터 포함한 것으로서, 많은 사람을 접촉하여 교화한다. 이를테면, 들어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아가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공자)의 주지와 같고, 인위가 없는 일에 처하고 말 없는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주주사(노자)의 종지와 같으며, 모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모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석가)의 교화와 같다.”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지만 한마디로 풍류도는 동양사상 전부를 포함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사상이었다고 적고 있다. 그러니까 풍류도는 ‘유불선이 소유하지 않은, 오직 풍류도만의 고유한 특색이 있는 사상’이었다는 것이다. 풍류도를 이와 같이 정의한 최치원은 어떤 사람인가? 최치원은 어린 나이(12세)에 당나라에 유학을 가서 18세에 빈공과에 장원급제했고, 10년간 벼슬을 하다 귀국한 천재다. 그는 당나라에 머물며 유교, 불교, 도교를 섭렵했다. 그러니까 그는 누구보다도 동양사상의 핵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그런 그가 풍류도란 고유한 사상을 밝혀 민족의 주체사상을 천명했다는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럼 풍류도는 어떤 도인가? 우선 최치원은 풍류도를 현묘지도(玄妙之道)라고 했다. 이는 풍류도의 사상성을 나타내는 말인데, 범부 김정설은 현묘지도를 ‘신라 고유의 도로서 유현오묘(幽玄奧妙)한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도교와 다른 독자적인 선도(仙道)라는 의미다. 그러나 최치원이 풍류도의 사상성을 표현하는 말로 ‘현묘’라는 단어를 선택한 것에 주목하면, 크게 보았을 때 풍류도가 도교적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우리가 풍류도를 이해함과 동시에 동양의 삼대사상을 포함한 풍류도가 동방 신라에 있게 된 역사적 배경이 어떤 것인지를 해명할 때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단석산 공양상
‘현묘’라는 단어가 도교적 술어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현묘’라는 단어가 노자의 ‘도덕경’1장에 나오는 “玄之又玄, 衆妙之門”에서 따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고려도경’에서는 노자의 도를 ‘현교(玄敎)’라 했다. 풍류도의 기본 바탕이 도교적이기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은 그것을 고유의 선도(仙道)라고 주장한다. 이 부분은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동의한다. 실제로 진흥왕이 원화제도를 창설할 때, 그가 그 제도를 창설하게 된 동기 중 하나로 그가 “천성이 멋스러워 신선을 크게 숭상하였다(天性風味 多尙神仙)(‘삼국유사’)”는 것을 든다. 이때 진흥왕이 숭상한 신선 분명 고유의 신선이다. 알고 보면 동아시아에서 신선사상의 뿌리는 한민족의 조상에 닿아 있다. 이런 표현을 하면 사람들은 또 근거 없는 민족주의적 발상이라고 비웃는다.

최근에도 어떤 교수가 고대사 관련 책을 내면서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어낸 21세기 한국에서까지 과장된 상고사에서 한민족의 자부심을 느낄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이제 배가 좀 불렀으니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건가! ‘난랑비서’만 보아도 동아시아의 가장 뿌리 깊고 원형적인 사상이 우리민족에게 전달되고 있었지 않았는가. 그 비밀의 문은 아직도 열리지 않았다. 새로운 동방르네상스는 그 비밀의 문이 활짝 열렸을 때 일어날 것이다.

정말 신선사상이 한민족의 조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을까. 조선 후기의 양명학자인 이종휘는 ‘수산집’에서 ‘노장의 도가 신라에 아직 도입되지 않은 혁거세부터 소지왕대까지 신라인은 노장의 도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능히 자연의 도에 따라서 다스려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가 말한 자연의 도란 풍류도다. 일제강점기의 최남선이나 범부 김정설, 안호상, 유동식, 도광순, 한흥섭 등 대부분의 학자들은 풍류도의 뿌리가 단군시대의 샤머니즘 혹은 신선사상에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단군조선시대의 종교사상은 어떤 것인가? 그 해답은 단군신화에 있다. 단군신화를 보면 천상에는 하느님인 환인이 산다. 그 환인의 서자가 땅에 마음을 두고 태백산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고, 환웅의 사상이 단군에 계승되어 단군은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을 이념으로 나라를 열었다. 그러니까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려고 천상에서 내려온 환웅은 신선인 셈이다. 때문에 그는 임무를 마치고 하늘로 선거(仙去)했다.

환웅으로부터 비롯된 홍익인간의 이념은 풍류도에 그대로 전달되어 ‘접화군생(接化群生)’으로 나타난다. 풍류도의 실천덕목인 접화군생은, 작게는 모든 사람을 만나 교화한다는 의미이지만, 크게는 모든 생명있는 것들을 진리 속으로 끌어들여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홍익인간의 다른 표현이다.

하지만 단군신화를 풍류도의 연원으로 했을 때는 그 정신이 삼교를 포함할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는 사상이라고 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풍류도의 연원은 그것보다 더 깊은 곳에 있을 개연성이 높다. 그 답은 환웅이 어디서 왔는지에 있다. 신화에서는 그가 하늘에서 왔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그는 다른 곳에서 이주해 왔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곳이 어디일까. 앞서 역사정체성을 설명할 때 밝혔듯이 환웅은 중원에서 동북지역으로 이주한 공공세력과 관련 있다.

▲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중원에 살 때 공공은 하늘을 공경하고 하늘과 소통하며 세상을 이끌었다. 『국어』초어(楚語)를 보면, 공공이 하늘과 통하는 통로를 차단한 사람이 황제의 손자인 전욱이다. 황제의 손자인 전욱이 ‘하늘과 통하는 통로를 차단(切地通天)’했다는 고사는 문명사적으로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다. 그것은 황제계가 중원을 장악하면서 땅의 질서를 자신들의 권능으로 잡아가겠다는 인문적 사고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신화적 사건으로 말미암아 중원에서는 무(巫)의 문화가 약화되고 땅의 질서는 땅에 있는 지도자들이 질서를 잡아간다는 인문정신이 배태되었다. 곧 도교적(초월적) 관점에서 세상을 끌고 가던 문화에서 유교적(인문적) 관점으로 세상을 끌고 가는 문화로 바뀌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 도교의 뿌리는 공공에 있다 하겠다.

결론을 내려 보자. 지금까지 풍류도의 연원을 추적하는 학자들이 대부분 그것이 고유한 선도와 관련이 있고 도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다고 이해했던 것은 바로 그 뿌리가 중원에서 도교의 원형적 사고를 만들었던 공공이 동북으로 이주했고, 그들과 곰 부족이 연합하여 단군조선을 만들었기에 그러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참고로 공공족이 하늘의 중심을 상징하는 기둥‘蘇塗의 立大木’을 세워놓고 하늘에 기도하며 소통하던 장면을 상형한 것이 무당 무(巫)자다. 그러니까 동아시아 전체에서 무교를 창시하고 계승했던 사람들이 공공이었고, 그들의 정신기맥은 단군조선을 거쳐 신라의 풍류도로 전승되었고, 오늘날에도 그 정신은 우리들의 무의식에 살아서 작동하고 있다.
단석산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의 주요 저서

△한반도는 진인의 땅이었다: 우리 고대사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서 △동이족, 한민족의 원류인가 △바람 타고 흐른 고대문화의 비밀: 유라시아 문화 코드로 우리 문화 새로 읽기 △천년왕국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 한민족의 혈맥을 찾아서△ 실크로드를 달려온 신라왕족 △‘시경’한혁편의 한후와 한씨조선에 관한 새로운 견해 △고깔모자를 쓴 단군: 부여족의 기원과 이동

김정모 기자
김정모 기자 kjm@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으로 대통령실, 국회, 정당, 경제계, 중앙부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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