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욱사회부장.jpg
▲ 이종욱 정치경제부장
20여 년 전 일이다.

3억 원가량을 들여 식당을 열었던 어느 50대가 1년여 만에 교통사고로 숨지는 일이 있었다.

사고가 난 뒤 유족들은 보상문제로 보험회사를 찾았고, 직업이 있었던 만큼 직업소득을 산정기준으로 한다는 말을 듣고 세무서를 찾아 소득신고내용을 확인한 결과 아연실색했다.

1990년대에 3억 원이라는 거액을 들여 개업한 식당의 월매출액이 44만 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자율을 5%로만 잡더라도 월 이자수입이 100만 원을 훌쩍 넘는 시절에 월매출액이 44만 원이면, 인건비는 차치하고 이자도 낼 수 없는 일을 했다는 뜻이었다.

유족들은 소득 내용을 포기하고, 직업이 없는 것으로 해 당시 도시근로자 평균수익(약 70만 원)을 기준으로 보상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진 원인은 당시 시행되고 있던 과세특례 제도상 대상자의 월 매출 한도가 44만 원이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식당의 현장 확인이 어려운 때문에 신고자의 내용만으로 과세특례대상을 지정하다 보니 결국 탈세의 원인이 된 것은 물론 재수 없이(?) 세무서의 조사만 받지 않는다면 별 탈 없이 식당을 운영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제도는 고액소득자의 탈세 도피처가 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폐지됐다.

오는 28일부터 시행되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을 두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법안은 당초 공무원의 부정한 금품 수수를 막겠다는 취지로 제안됐지만, 입법 과정에서 적용 대상이 사립학교 교사, 언론인과 이들 배우자 등 민간 영역으로 확대되면서 적용 대상자는 약 4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입법과정에서 부정청탁의 대명사화된 국회의원은 대상에서 빠진 반면 유치원 교사까지 대상으로 적용하는 웃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법 시행과 동시에 ‘최소 100만 명을 일시에 범죄자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배경에는 현실을 외면한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즉 수천만 원 짜리 시계를 몇 개씩이나 받은 국회의원은 부정하지 않고, 3만 원 짜리 식사나 5만 원 짜리 과일 선물, 10만 원짜리 상품권 받은 교사나 공무원만 부정하다는 뜻인지?

현실은 전혀 반영하지 않은 채 책상머리에 앉아서 법안을 제안한 권익위 관계자들과 이를 법으로 제정한 국회의원, 법안을 심사한 국무위원들이 자기 지갑에서 돈을 꺼내 밥값이나 과일값을 치러 보기나 했는지?

이들의 어쭙잖은 생각으로 인해 땅과 하늘과 바다만 바라보며 우직하게 살아온 농·어민들만 시름에 잠겼고,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2세 양성을 책임지고 있는 모든 교육자가 ‘예비적 범죄자 후보군’으로 전락해 버렸다.

참으로 웃기는 법안이고, 어이없는 제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국민을 위협하는 법안이라면 법의 권위에 앞서 새롭게 정립해야만 애써 만든 법이 사장되지 않고 나라를 바로 지켜갈 수 있을 것이다.




이종욱 기자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정치, 경제, 스포츠 데스크 입니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