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양 대법원장의 접견실에는 추사 세한도 모작을 걸기까지 했다. 사법부가 ‘세한의 소나무’가 돼야 한다는 신년사를 들은 대전에 사는 박구용씨가 보낸 그림이었다. 박 옹은 그림과 함께 보낸 편지에서 “자신에게는 소중한 그림이지만 대법원장의 신년사가 마음에 와 닿아 조건 없이 드린다”라고 썼다. 살을 에는 엄동설한에도 꿋꿋하게 버티는 소나무처럼 사법부의 기상을 세워달라는 뜻을 전한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장 접견실에 걸린 세한도가 무색해졌다. 양 대법원장이 지난 6일 김수천 부장판사 뇌물 비리 사건으로 직접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김 부장판사는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전 대표로부터 1억7천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지난 2일 구속됐다. 대법원장은 사과문에서 법관의 직업윤리 중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로 청렴성을 언급했다. 청렴하지 않은 법관은 법관의 양심을 가질 수 없고, 양심이 없는 법관이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대법원장의 사과도 접견실의 세한도만큼 공허해 보인다. 지금의 법조계를 보면 법관 개인의 윤리관과 청렴성에만 의존해서 될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지난 6월 정운호 구명로비 의혹 사건과 관련, 전관 비리 방지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실효성을 의심받고 있다.
“나라와 국민이 어려움을 겪을 때 새 활력의 원천”으로 변치 않는 소나무가 돼야 할 사법부가 국민 지탄의 대상이 되고 국가 활력을 꺾는 쉬 시드는 잡초가 되고 있다. ‘소나무 판사’들이 많아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