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일 영남대 교수

문어는 매우 비싸다. 평소에도 값이 비싼 고기이지만, 추석 등 명절에는 더욱 비싸다. 추석에 제사를 모시는 거의 모든 집에서는 문어를 제사상에 올린다. 마른 문어뿐 아니라 살아있는 것을 삶아서도 올리기도 한다. 아마도 지금과 같은 냉동기술 등 유통시설이 발달하지 못한 때에는 마른 문어를 제사상에 올렸을 것이다. 지금은 방금 갓 잡은 것처럼 싱싱한 문어를 시장에서 살 수 있는 세상이라서, 제사상에도 삶은 문어를 올릴 수 있게 되었다. 마른 문어보다는 생물인 문어가 값이 비싼 것은 불문가지이다. 文魚는 ‘글월 文’자를 사용하여, 글을 아는 귀한 고기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안동을 비롯한 경북지방에서는 제사상에 반드시 마른 문어나 삶은 문어를 내어놓도록 함으로써 조상에 대한 숭배를 더욱 지조와 품격이 풍기도록 하였다.

그러나 문어의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일부 지역이나 집안에서는 문어 대신 마른오징어나 삶은 오징어를 올리기도 한다. 그렇지만 문어와 오징어는 8개의 다리를 가진 고기이고, 육질도 비슷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문어를 낼 수 없는 경우에는 오징어로 갈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제사상에 올리는 음식에는 고기 이름에 갈치, 꽁치 등 치자가 들어가는 어류는 올릴 수 없는 등 일정한 제한이 있지만, 아마도 그 음식의 종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후손들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제사를 모시는 자손들이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서 아무리 비싸거나 귀한 음식을 제사상에 올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조상의 입장에서는 고기는커녕 비록 나물 한 접시밖에 올릴 수 없는 제사상이라도 후손들이 화목하고, 서로 웃으면서 제사를 모실 때 더 편안해 할 것은 분명하다.

우리 집에서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선친께서 돌아가신 이후 맏이인 내가 제사를 주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노모의 쪽지에 의존하여 제사장을 보게 되었고, 결혼 후에도 자연스럽게 계속하여 지금까지 내가 제사장을 보고 있다(간혹 집사람이 동행하기는 하지만, 주로 내 혼자 장을 보는 경우가 많다). 제사상을 감독하는(본인은 아이들이 장성하여 이제는 남편의 제사상에 관여할 입장도 아니고, 전혀 관심도 없다고 하면서도, 사실상 진두지휘하는) 모친의 입장에는 남편의 혼령이 와서 먹을 수도 있는 제사상을 좀 더 잘 차려주었으면 하는 바램은 있었을 것이다. 장남인 나로서도 고생해서 먹고 살만하게 되었을 때 별세한 선친에 대한 애절한 마음에 제사상만이라도 좀 더 근사하게 차려서 영혼(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이라도 좋아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였다. 

선친 별세 당시 철부지 대학생이었던 그 때 제사를 잘 차린다는 것의 기준을 제사상에 올라가는 고기의 크기와 문어의 등장 여부에 집중하였던 같다. 모친도 그 당시 나와 동일한 마음을 가졌던지 고기의 마리 수보다 고기의 크기로 판단하는 것 같았다. 이제 구순을 앞둔 노모는, 팔순이 되기 전에는 혼자서도 밥을 잘 드셨지만, 혼자 있을 때는 밥을 많이 먹지도 않은 것 같고, 심지어 귀찮아서 굶기도 하는 것 같다. 제사상에 문어를 반드시 올려서 선친 제사를 잘 차려드리는 것이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덕적 의무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살아계시는 노모에게 밥상을 차려 드리는 것이 더 중요한 법적 부양의무가 되었다. 더욱이 밥상을 차려드리고 혼자서 드시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본인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이 문제이고, 그래서 해결책은 같이 함께 먹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돌아가신 선친을 위하여 비싼 큰 문어 한 마리를 추석 제사상에 올리는 것보다 살아계신 노모와 함께 추석 아닌 평일에 밥을 같이 먹는 것이 더 중요한 시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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