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 신녕면 연정리 연계서원옆 '옥정원'

교육을 통해 민족의 혼을 되새기고 불의에는 단호히 맞서며 정의를 추구했던 송계 선생의 흔적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는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공원이 새롭게 조성돼 눈길을 끌고 있다.


최근 완공된 이 곳은 정부예산이 투입된 관(官) 주도의 생색내기용 공원이 아닌 존경받는 옛 학자의 후손이 거액의 사비를 들여 3년여 기간 동안 직접 역사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도록 특색 있게 재현해 그 의미를 더하고 있다.

경북 영천시 신녕면 연정리 연계서원(連溪書院)옆 ‘옥정원(玉井園)’이 바로 그 곳이다.

옥정원은 구한말 유학자였던 송계(溪) 한덕련(韓德鍊, 1881~1956) 선생이 전성기 때 강학하신 화산(華山) 옥정리(玉井里, 현 군위군 고로면 화산고원)를 재현해 만든 공원이다.

구한말 큰 선비였던 송계 선생은 도학군자(道學君子. 학문이 깊고 덕이 높은 사람)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군위군 고로면과 산성면 영천군 임고면 매호리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며 도학을 깊게 닦고 덕행을 몸소 실천에 옮긴 유학자다.

옥정동은 1918년 송계 선생이 이주하자 군위, 의성, 안동은 물론 강원도에서까지 가르침을 받기 위해 수백 명의 제자들이 몰려들었으며 당시 밤이면 화산고원 일대가 글 읊는 소리로 뒤덮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옥정동에는 서당을 중심으로 옥정샘이 있었고 선생이 시를 읊던 어풍대와 금탕수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또 다른 항일을 두려워 한 왜경들의 횡포와 탄압이 심해졌고 더 이상 교육을 할 수 없게 된 송계 선생은 1921년 옥정동을 떠나 군위군 산성면과 영천 임고면으로 옮기면서 후학을 양성했다.

가는 곳 마다 제자들이 많이 모였다. 

만년에 이곳 영천시 신녕면 연정리(현 연계서원)로 내려와 마지막까지 학문(學問)과 후진양성에 매진했다.

이 같은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문인과 후손들은 1995년 6월 ‘송계선생추모사업회’를 구성하고 지난 2004년 옛 서당터에 연계서원을 준공, 지금까지 매년 학술대회와 백일장, 사생실기대회 등을 개최하며 송계 선생의 학문과 업적을 되새기고 있다.

‘옥정원’은 연계서원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으며 6천600㎡(2천 평) 부지에 수백 년 된 소나무 200여 그루와 송계 선생의 시, 철학, 사상, 고뇌 등이 적힌 10여 개의 돌, 군자의 기개를 나타내는 대나무, 연못 등으로 특색있게 꾸며 졌으며 소품 하나 하나가 선생의 발자취를 재현해 조성됐다.

돌에 새겨진 글귀 중 ‘성인(聖人)의 도(道)는 평소 일상 생활하는 곳에 있으니 높고 멀어서 행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는 선생이 15세 때 논어 향당편을 읽고 말한 글이다.

또, 선생이 남긴 1천여 수 시중에 선생의 철학이 담긴 ‘洗心示同志(마음닦음의 원리를 동지들에게 보이다)’는 원문과 풀이를 해 비석에 깨알같이 새겨져 있다.

일제의 창씨(創氏) 요구에 단호히 맞선 ‘固守父祖姓 千萬吾往勇’(조상으로부터 물려 받은 성(姓)을 지키는 것은 천만인이 막아도 내 갈 길을 가는 용기다)와 일본에 주권을 빼앗긴 것을 탄식하며 주권 회복을 기원하면서 지은‘무궁화를 심다’ 등은 조국의 광복과 번영을 기원했던 송계 선생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져 있다.

이외에도 자연을 읊은 시로는 ‘金湯水(금탕수)’, ‘南江舟中(남강의 배 위에서)’ 등의 시가 자연석에 새겨져 있었다.

후학들이 선생을 추앙하는 내용으로는 ‘자나 깨나 도(道)를 구하여 죽고서야 그치는 분은 송계 선생 바로 그 분이시다’,‘경모(景慕)의 표석(標石)으로 이 돌을 세우다’ 등으로 선생의 발자취와 후학들의 흠모와 존경이 내포돼 있다.

이처럼 난세(亂世)를 만나 교육을 통해 민족의 얼을 지키고 국권 회복과 후학 양성을 위해 한평생을 헌신했던 송계 한덕련 선생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옥정원’이 재현되면서 학계에서는 “옛 문화의 흔적을 제대로 표현한 의미 있는 공원으로 청소년들의 배움과 체험의 장소로 제격이다”고 평가하고 있다.

특히, 이 공원은 송계 선생의 손자인 한명동 한스그룹 회장(경상북도 문화융성위원장)이 문화적·교육적 가치를 후손들에게 남기기 위해 10억 원이 넘는 사비를 투자해 공익사업 목적으로 조성한 곳 이어서 재산가치 보다는 보전가치가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3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옥정원을 조성한 한명동 경북도 문화융성위원장은 “서원은 학문이 깊은 존경 받는 옛 선비를 기리는 곳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며 “문화적 가치보다 의미 있는 투자는 없다. 후손들이 선비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문화의 흔적을 직접 체험하고 배우는 장소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앞으로는 서비스 산업으로 관광과 문화가 중요하고 이 중에도 문화융성으로 일자리가 많이 창출될 수 있다“며 ”문화와 산업이 접목하는 대구경북지역 문화융성정책이 내실 있게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남은 여생 동안 최선을 다 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 회장의 조부인 송계 한덕련 선생은 구한말 영남이 배출한 최근세의 대유학자로 평생을 학문에 몰두하며 후학양성에 힘쓴 대표적인 옛 선비의 표상이 되고 있다. 






이기동 기자
이기동 기자 leekd@kyongbuk.com

서울취재본부장. 대통령실, 국회 등을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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