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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음식남녀, 식색(食色)을 제외하고 인생의 열락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것들에 등급을 매긴다면 또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서양 민담 ‘악마와 대장장이’(이야기 유형 330)을 보면 재미있는 소원담(所願談)이 나옵니다. 살면서 바라는 게 무엇이어야 하는지, 인생의 행로가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대장장이가 “개나 다름없이 종교를 믿지 않지만” 문을 두드리는 모든 거지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착한 심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분수에 넘치는 적선은 결국 그 자신도 거지가 될 신세를 불러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혼을 악마에게 팔고 7년의 유예 기간을 얻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예수와 성베드로가 거지로 변장하여 그를 찾습니다. 대장장이는 그들에게 훌륭한 식사와 깨끗한 옷과 정결한 잠자리를 제공합니다. 그 보답으로 예수는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성베드로는 그에게 천국을 소원하라고 충고하지만, 종교를 믿지 않는 대장장이는 그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 대신 “내 가방에 내가 원하는 것이 들어가게 해 달라”, “언제나 이기는 카드를 달라”, “누구나 춤추게 할 수 있는 바이올린을 달라”라는 세 가지 소원을 말합니다. 7년이 지나고 악마의 사자가 왔습니다. 대장장이는 그를 가방 속에 들어가게 해 달라고 소원합니다. 또다시 7년이 지나고 이제는 악마가 찾아오자 그와 카드놀이를 벌여 그를 제압합니다. 그에게 사로잡혀 있는 수많은 불쌍한 영혼들도 구출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들 불쌍한 영혼들을 이끌고 천국의 문턱에 도달한 대장장이는 불경죄를 범했다 하여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성베드로를 ‘누구나 춤추게 하는 바이올린’으로 지칠 때까지 춤추게 합니다. 그렇게 세 가지 소원을 써서 대장장이는 천국의 문을 엽니다. ‘로버트 단턴(조한욱 역), ‘고양이 대학살’, 94~95쪽, 참조’

‘악마와 대장장이’라는 이야기에는 수많은 판본이 있습니다만 그 핵심은 위에서 나온 몇 가지 소원 모티프들입니다. 물론 ‘대장장이’라는 주인공도 중요합니다. 대장장이는 ‘불을 지펴서 쇠에 열을 가하고 두드려서 필요한 도구(무기나 생활용품)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신령스런 불을 통해서 신과 소통이 가능한 존재’라는 주술적 의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대장장이는 인간 중에서는 가장 창의적이고 실천력이 있는, 인간계의 대표선수라 할 만한 존재인 것입니다. 대장장이들이 ‘인간 아닌 것들’과 겨루어서 곧잘 승리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장장이 소원담에서 주목해야 될 것은 역시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것’, ‘카드놀이에서 늘 이기는 패를 가지는 것’, ‘누구든 춤추게 하는 바이올린을 가지는 것’ 등의 핵심 화소(話素)들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 이야기 요소들이 결국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악마의 유혹’만큼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요? 권력이든 재물이든, 내 영혼을 담보로 얻어내는 것들은 언제나 황홀한 쾌락을 선사합니다. 돈으로, 권력으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다가 한순간에 몰락하는 1%의 인간들은 ‘영혼을 팔아서 사는 쾌락’의 중독자들입니다. ‘카드놀이에서 늘 이기는 패’를 가지는 것도 그렇습니다. 먹고 사는 일만 해결되면 인생은 결국 ‘카드놀이’일 뿐입니다. 그들에게는 오직 ‘이기는 일’만이 중요해집니다. 늘 이기던 카드놀이에서 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을 또 얼마나 많이 봅니까? 그러니 최후, 최고의 소원은 ‘누구나 춤추게 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욕망, 모든 쾌락의 끝판왕이 바로 ‘춤’입니다. 예술이고 자기만족의 열락입니다. 희생과 용서를 아는 선한 마음이고요. 그걸 아는 자만이 행복의 문을 자기 손으로 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분수없이 선한 대장장이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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