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태 전 검찰청장

人固有一死 (인고유일사·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死有重於泰山 (사유중우태산·죽음이 태산보다 무겁기도 하고)
或輕於鴻毛 (혹경우홍모·어떤 죽음은 깃털보다 가볍기도 하니)
用之所趨異也 (용지소추이야·그 쓰이는 바가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 전한(前漢)의 역사가 사마천이 친구인 임안에게 보낸 서신인 ‘보임안서’에 나오는 말이다.

사마천은 젊어서 여러 지역을 여행한 후 관리가 되었고, 아버지가 죽자 뒤를 이어 태사령이 되었다. 47세 때 억울하다고 생각한 이릉(李陵)을 변호하다가 한 무제 유철(劉徹)의 뜻을 거스르게 되어 궁형을 당했다.

그 스스로 궁형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이 없다고 했으니 그가 감내해야 했을 치욕과 분노, 고통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그의 심정이 ‘보임안서’에 그대로 나타나 있는데, 글자 한 자 한 자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아 읽는 이마저 고통의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는 글이다.

글에 따르면 그는 이런 치욕을 당하고도 자결하지 않고 살아남은 까닭을 “자기 마음속에 다 드러내지 못한 바가 있어서이다.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경우 후세에 문채(文彩)가 드러나지 아니한 것을 한스럽게 여겨

서이다. 천하의 산실(散失)된 구문(舊聞)을 수집하여 과거사를 상고하고 처음과 끝을 정리하여 성패흥망(成敗興亡)의 원리를 살피며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에 통달하여 일가를 이루고자 함이다”라고 쓰고있다. 말하자면 이런 취지로 ‘사기’를 집필했다고 한다.

‘사기(史記)’는 중국 전설 시대부터 한 제국 초기에 이르기까지 고대 중국을 무대로 왕조와 사람의 흥망성쇠를 기전체로 쓴 역사서이다. 역사상 있었던 사건들을 질서정연하게 기술하되, 객관적인 서술보다는 교육적인 역사에 중점을 두어 역사상의 인물들에 대하여 도덕적인 평가를 했다.

그건 그렇고 사마천은 유철에게 복수를 한 것인가? 뜬금없이 유교를 유일한 통치이념으로 삼은 유철을 지목하여, 이는 사상의 스펙트럼을 좁히고 다양한 이념이 형성될 토양을 파괴하여 사회가 균형 감각을 잃고 극단으로 치우칠 여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독재나 독단을 정당화할 수있는 명분을 제공할 수 있게 하였음을 두고두고 비판받게 만들었으니 그가 이긴 것인가? 그렇다면 사마천은 유철에게 복수를 한 것인가!


김진태 전 검찰청장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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