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이번 주부터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명절 신드롬이니 포비아니 뭐니 하면서 어깨가 아프고, 일손이 안 잡히고, 시집에서의 남편 언행을 보니 분이 안 풀린다는 등 나라 전체가 와글와글, 시끌시끌하다. 자식들은 도시에 살면서 이렇게 떠들고 다니고, 언론도 이들이 애독자이고 시청자이니 모두 자식 입장만 두둔하는 기사를 쓰거나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고향에 혼자 남은 부모는 며칠간 사람 사는 것처럼 집안이 복작거리더니 자식들이 떠나고 난 이후 적막강산이 되니 오히려 더 심심해져 혼자 사는 두려움과 걱정이 태산 같다. 이들은 독자도 아니고 수동적 시청자이니,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언론도 없고, 언론에서도 관심도 없다.

그러니 며칠 전 모 일간지에 추석 연휴에 고향 가서 부모님 숨은 질병을 찾을 수 있는 기사를 떡하니 게재하는 게 당연하고, 일단 제대로 된 기사라고 볼 수도 있다. 그 기사를 보면서 한편으로는 부모에게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유하는 것이니 고마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기사에 있는 대로 한다면, 추석이 아니라도 이미 병원에 가야 할 형편일 것을, 그럴듯하게 소설을 써놓았으니 말이다. 고향에 있는 부모야말로 오랜만에 자식이 온다고 하면, 없는 힘이 솟구치고 평소 먹지 않던 음식이라도 구해서 자식에게 먹이려고 하면서 부산을 떨 수밖에 없는데, 오랜만에 찾은 자식이 어떻게 질병을 찾을 수 있겠는가.

노모는 어느 날 눈이 침침해서 안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자식으로서는 학교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다가 방학 중 어느 날 안과에 모시고 갔다. 그랬더니, 백내장이 심해졌다고 하여 양 눈을 모두 시차를 두고 수술을 하였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이후 자식이 학교 보직을 맡아서 점점 바빠지다 보니, 자주 노모 집에 들르지 못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부터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백내장 수술을 하면 밍경알(?)처럼 눈이 보여 바늘구멍에 실을 넣는 것도 문제가 없다고 하던데, 왜 눈이 안 보일까. 

아들에게 보채봐야 안과에 데려가지 않으니, 딸에게 전화하였고, 이에 누나가 노모를 안과에 데려갔더니, 심각한 안질환이 생겼다고 하면서 눈 보호 영양제를 먹으라고 하더란다. 그제야 아들이 안과에 엄마를 모시고 가서 다시 검사한 결과, 노모의 눈은 정상이란다. 그 참 이상하네. 문제는 눈이 안 보인다고 하는 노모가 동네 병원에 혼자서 다니고, 심지어 동네 장날에 가서 필요한 물건도 사서 온다는 점이다. 또 아들이 집에 가면 누구요? 라고 하면서 잘 안 보인다고 하는 노모가 장손자가 말없이 집 마당에 들어서기만 하면, 아이고 우리 손자 왔구나 하면서 반긴다. 심지어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박근혜 대통령은 보이는데, 특정 정치인이 나오면 안보 인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노모 눈에는 본인이 보고 싶은 것만 보이고, 보기 싫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그런데 부모님 행동에서 부모님 질병을 찾는다고? 아이고, 꿈도 야물다. 부모의 질병은 자식이 관심을 가지면 없어지는 것인데, 어떻게 그것을 찾아내노? 내가 노모에게 해드릴 수 있는 것은 자주 찾아보고, 눈 보호 영양제를 사다 드리는 것밖에 없다. 심지어 아예 눈과 관계없는 영양제를 눈약이라고 속여서(이런 걸 ‘플라시보’) 매일 3번씩 잡숫도록 함으로써 시력도 회복(?)하고, 건강도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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