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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선규 대구교대 교수

“처음 30년은 부모님의 삶, 다음 30년은 자녀의 삶, 마지막 30년은 나의 삶.” 얼마 전에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조실부모하고 초년고생을 제대로 한 저로서는 금방 수긍이 가지 않는 3분법이었습니다. 왜 처음 30년이 부모님의 삶이지? 아내 몫은 어디 있지? 그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이해가 갔습니다.번듯한 부모 슬하에서 반듯하게 자란 사람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렇게 이해하고 나니 그 말이 듣기 싫지만은 않았습니다. 

일종의 ‘독립선언’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나 전체적으로나, 평생 이 눈치 저 눈치 보면서 자기들끼리도 경쟁 관계로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베이비부머 세대 아니겠습니까? 요즘 ‘밀정’이라는 영화에 관객이 많이 든다는데, 평생을 밀정처럼 살아온 자들이 바로 ‘마지막 30년’을 목전에 둔 그들일 것입니다. 저도 물론 그 일원이고요. 당연히 “이제는 나 살고픈 대로 살겠다”라는 기백이 보기에 좋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을 30년씩 삼등분해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만큼 수명이 연장되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그런 ‘30 X 3’ 이론이 나온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고작해야 10년 정도가 가능한 시한이었습니다. 살아생전, 10년만 버티면 경험칙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10년은 살아봐야 결혼(부부) 생활을 안다’와 같은 말들이 그 대표적인 예가 되겠습니다. 그 이상의 기간이 허용하는, 경험을 통한 각성과 통찰을 예전에는 몰랐습니다. 그 이상의 시간이면 아예 훌쩍 건너뛰어서 ‘천 년의 사랑’과 같은 아예 비현실적인 수사(修辭)로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이를테면, 신라 흥덕왕이 질녀였던 아내 장화 부인의 때 이른 죽음을 절절히 애도해 내내 독수공방으로 일관하다가 합장을 유언하고 죽은 사실을 두고 그 왕릉 앞에서 ‘천 년의 사랑’을 운위(云謂)하는 것이 그런 예가 됩니다. 그 옛날 한 남녀의 애절했던 인연을 현재의 내 사소한 연애와 비교해 보니 그렇다는 이야기겠습니다. 그 비슷한 이야기를 언젠가 한 번 썼던 기억이 나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인생 100년이라는 말이 그저 듣기 좋고 쓰기 편한 말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 되었습니다만, ‘마지막 나의 삶 30년’이 어떤 것이 될지는 아직도 오리무중입니다. 예상도 못 하겠고 준비도 못 하겠습니다. 30년 이상 다녀온 직장에서 나와야 하는 것도 걱정이고, 자녀들과도 헤어져 살아야 되는 것도 섭섭하고, 노년 생활의 건강 문제도 큰 염려가 됩니다. 그 모든 것이 처음 해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없이 30년을 버틴다는 것도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고, 신체 활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태에서 별다른 열락 없이 긴 세월을 견딘다는 게 어떤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조금 예측이 되는 것이 있기는 합니다. 아내와의 평생 동거가 어떤 스타일로 유지될 것인지는 대강이나마 윤곽이 잡힙니다.

“적어도 세 사람하고는 살았던 것 같네요.”

언젠가 직장 후배들과의 대화 가운데서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 모두 웃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결혼 생활 30여 년 동안 제가 겪은 아내가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 초, 아이들 한참 클 무렵, 그리고 인생 말년인 지금, 그렇게 세 번쯤 집사람에 대한 제 느낌이 변화하더라는 거였습니다. 마침 그 자리에 50을 바라보는 노총각도 있었습니다. 그가 “상승이요? 하강이요?”라고 물었습니다. 대답 대신 이렇게 말했습니다. “멋진 여자를 찾지 말고, 내가 멋진 사람이 되기를 노력하라. 그게 훨씬 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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