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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수환 전 의성공고 교장
나는 어릴적에 감나무를 아주 좋아했다.

나의 어릴적 집은 마당에 감나무가 두 그루 살구나무가 두 그루인 초가삼간 집이었다. 감나무가 있는 나의 집이 최고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살구가 익고, 감이 익는 때는 즐거운 시절이다. 6월하순부터는 하교하면 잘 익은 살구를 실컨 따먹고 8월경부터는 풋감을 주어먹고 9월경 여름이 끝날 무렵부터는 홍시를찾아 따먹는다. 감쪽대가 소중하다. 살구나 감은 나무에 올라가서 손이 미치는 것은 손으로 따고. 손이 미치지 않는 것은 장대나 쪽 대로 딴다.

앞마당에 있는 감나무에서 어린감이 저절로 떨어진다. 자연적인 열매 솎음인 셈이다. 감꽃이 피고 감이 생길 때부터 어린감이 매일 떨어진다. 그러던 것이 차츰 굵어져서 요즈음(7월 하순경)은 제법 풋감이 된다. 살구나 호도크기정도나 된다고 할까.

이정도의 풋감이 감나무에서 떨어질 때면 시골 아이들은 새벽 일찍부터 온 동리에 감나무들을 찾아다닌다. 감나무 밑의 풀을 헤치면서 풋감을 줍는다. 운이 좋은 아침이면 한바가지 20여개를 주을수도 있다. 많이 주은 날은 신이 난다. 집에 와서 등겨가마니위에 나란히 늘어놓고 몇 일이 지나면 말랑한 홍시가 된다.

하루에도 몇 차례씩 홍시가 다 되었는지 손으로 만져보고 단단하면 더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기에 지쳐서 좀 덜 무른 것을 이정도면 되겠지 싶어서 먹으려고 입에 넣어보면 지독하게 떫은 탄닝성분이 볼 안쪽에 달려 붙어서 크게 놀라 쩔쩔매고 뛰어가서 찬물로 입안을 씻고 한참 법석을 떤다.

깨진 풋감의 액이 흰옷에 묻으면 검게 천연염색이 되어서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다. 아무리 주의를 해도 감물이 베어서 얼룩진 흰옷을 입어야만 하던 것도 그 시절 이야기다.

잘 무른 것은 지그시 눌러 쪼개면 반으로 쪼개진다. 속이 노름하고 말랑한 풋감 홍시가 되어있다. 맛이 그만이다. 시골 어린이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간식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시골의 감나무에서 잘 익은 붉은 감홍시가 떨어져 있어도 줍는 이가 아무도 없어 감나무 밑에 그냥 썩어 간다. 옛일을 생각하면서 한번 주어서 먹어보면 역시 옛맛 그대로 맛좋은 감맛이다. 먹을 것이 너무나 풍족해서 비만이 걱정인 세상으로 변한 것이 현재이다.

감나무 그늘 밑에 대나무 살평상을 놓으면 최고의 정자다. 넓고 두꺼운 감잎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 아주 시원하다.감나무에 붙은 매미가 울고 있는데도 별로 시끄러운 줄을 모른다.

매애~~(길게)(초여름), 매롱 새롱(한여름. 쓰름매미), 맴맴맴매애~앰(늦여름. 참매미). 매미의 소리 속에서도 감나무 밑은 즐거운 정자다.

10월이 되고 서리가 내려 곱게 물든 감잎단풍이 뚝뚝 떨어지면 다시 빨간 감열매가 주렁주렁 또 다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낙엽이 된 감잎단풍잎도 그 어느 단풍보다 곱다. 빨강 노랑 초록 등 여러 색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어 일반 단풍잎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래서 낙엽이 되어 땅바닥에 깔려있는 고운 단풍잎을 주워 모아보기도 하지만 며칠이 못되어 색이 가버리니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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