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을 찾아 떠나는 포경선 피쿼드 호에는 세 사람의 주역이 있습니다. 에이허브 선장(Captain Ahab), 1등 항해사 스타벅(Starbuck), 그리고 퀴이퀘그(Queequeg)입니다. 유일한 생존자인 화자 주인공 이스마엘(Ishmael)은 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차분하고 진지한 자세로 하나씩 기록합니다.
자신을 불구자로 만든 백경(거대한 흰고래)을 잡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에이허브 선장, 그의 무모함에 맞서는 1등 항해사 스타벅, 묵묵히 자신의 소명을 다 하는 인간애의 표상 퀴이퀘그는 ‘인간의 숙명’을 각각 나누어서 묘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소설적 인물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맡아서 열연(熱演)하고 있는 각 부분을 우리는 일생 동안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혹은 타고난 성격에 따라서, 어느 부분은 확장되고 어느 부분은 축소됩니다. 에이허브가 ‘승리하는 인간’의 삶을 대표한다면 스타벅은 이성적이고 신중하고 정열적인 모범적 삶을 대표합니다. 그들이 상층부의 삶을 묘사한다면 퀴이퀘그는 하층부의 건실한 삶을 묘사합니다. 희생과 헌신을 알고 자신의 소명에 충실한, 드러나지 않지만 소중한 ‘인간적인 삶’을 대표합니다.
이 소설적 인물들의 매력은 160여 년이 지나도 여전합니다. 한쪽 다리가 목발인 에이허브 선장은 모든 ‘성 잘 내는 위대한 지도자’들의 대명사입니다. 폭풍우를 뚫고 나아가는 포경선의 선수(船首)에 서서 ‘앞으로!’를 외치는 그의 모습은 어느 조직에서든 선두에 선 자들의 집단 무의식으로 전승되고 있습니다. 사랑스런 1등 항해사 스타벅은 ‘스타벅스’로 복수화되어 친근한 커피 가게로 우리 곁에 머뭅니다. 퀴이퀘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로코보코(코코보코)의 왕자’로 불리며 젊은이들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그의 고향 로코보코도 ‘지도에 없는 진정한 장소’의 대명사가 되어 이런저런 문맥에서 핵심적인 상징으로 등장하곤 합니다.
살다 보면 ‘지도에 없는 것들’과 마주칠 때가 있습니다. 당황스러울 때도 있고 반가울 때도 있습니다. 사람도 그렇습니다. 지도만 보고 걷는 사람도 있고 틈날 때마다 ‘지도 밖으로’ 걷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경우를 돌아다봅니다. 젊어서는 ‘지도 안의 삶’에 몰두했던 것 같습니다. 나이 들면서 ‘지도에 없는 것들’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만약 지금 저에게 누가 문학을 묻고 글쓰기를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자기만 아는, 지도에 없는, 자기만의 로코보코가 있을 것입니다. 문학적 글쓰기는 결국 자기만의 로코보코를 찾아 나서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장소의 아름다움, 그 장소에서 꾸는 목숨의 꿈을 자기 손으로 그리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