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역에 가면
하늘도 세 평 꽃밭도 세 평

이 봉우리에서 저 봉우리로
구름 옮겨가는 소리
지붕이 지붕에게 중얼거리는 소리
그 소리에 뒤척이는 길 위로
모녀가 손잡고 마을을 내려오는 소리
발밑의 흙들이 자글거리는 소리
계곡물이 얼음장 건드리며 가는 소리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송아지
다시 고개 돌리고 여물 되새기는 소리
마른 꽃대들 싸르락거리는 소리
소리들만 이야기하고
아무도 말하지 않는 승부역
그 소리들로 하염없이 붐비는

고요도 세 평


감상) 가장 잘 말하기는 말하지 않는 것이라고 마침표를 찍고 강의실에서 나왔다. 뒤통수가 오랫동안 간질거렸다. 내가 한 시간 동안 떠든 말들이 내 뒤에 와서 웅웅거렸다 꽃 지는 소리 같은, 빗방울 꽃잎 뚫는 소리 같은, 내 말은 왜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밖으로만 떠도는 메아리 같은가.(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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