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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일행이 식당에 가면, 일반적으로 무리 중에 가장 나이가 어리거나 직책이 낮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일행들 앞앞에 수저를 가지런히 놓거나 컵마다 물을 따라 놓는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그런 습관이 몸에 베어서 지금도 식당에 가면 내가 그렇게 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일행 중 다른 사람이 자신이 하겠다고 나서서 제지하는 경우에는 슬그머니 뒤로 빠지고 만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수저를 놓으면서 꼭 휴지를 한 장 깔고서 그 위에 놓는 경우를 자주 본다. 사실 그 식당휴지라는 것이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발암물질이 있다는 보도에 한동안 멀리한 적도 있었고, 다소 위생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나로서는 별로 반기지 않았다. 간혹 식당 중 아주 장사가 잘되어 손님이 미어터지는 경우에는 식당휴지를 사용하지 않고 고급티슈를 사용하는 곳도 있는데, 그 경우에는 티슈를 흔쾌히 사용하기도 한다.

한편, 혼자서 무엇을 먹는다는 것은 좀 거북스럽다. 술을 혼자서 먹는다는 것은 중독의 위험이 있을 수 있다. 밥은 중독의 위험은 없지만, 혼자서는 식욕이 나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밥은 모여서 먹어야 맛이 있고,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것도 그렇기 때문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결국 혼자서 밥을 먹을 수밖에 없다. 독거 노인이 혼자서 밥 먹는 것을 꺼리다가 먹지 않고 며칠을 지내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가 좋지 않은 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노모는 혼자서 밥을 먹을 때는 자신이 가늠하는 양만을 먹고, 그 연세에 부담될 정도로 힘든 농사일을 하기 때문에 곧 허기를 느끼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을 다니기 때문에 매일 노모 집에 들르지 못하는 자식의 입장에서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들릴 때마다 집에서 노모와 같이 먹자고 하기보다는 바깥 식당에서 밥을 사 먹자고 강권한다. 그럴 때마다 노모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식당에 가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예의가 아닐 뿐 아니라 남 보기도 부끄럽다고 하면서 극구 가지 않으려고 한다(실제로는 밥을 사 먹는 비용이 아까워서 그런가 싶지만, 그런 말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노모 또래의 노인들은 음식을 먹다가 남기는 것은 죄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몫으로 배정된 음식을 소량으로 하거나 가져온 음식은 무리를 해서라도 모두 먹으려고 하는 습관이 있다. 그래서 노모에게는 항상 국물이 있는 음식을 권하고, 식사 시작과 동시에 곧바로 밥을 국에 말아서 드린다(이 경우 한 숟갈을 뜨지도 않고 밥을 만다고 난리를 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면 평소 먹는 것보다 많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혼자서 밥을 제대로 먹지 않은 것을 보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후 두 세끼를 굶더라도 허기지지 않도록 하자는 못된 자식의 꼼수였다.

또한 노인은 깨끗하게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노모는 밥을 먹을 때마다 항상 휴지로 입을 훔치는 버릇이 있다. 그때마다 스스로 너무 깔끔이처럼 차려입거나 위생적으로 노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서 신기한 눈으로 노모를 쳐다보곤 하였다. 나이가 들면 조금씩 추해지거나 에티켓을 지키지 않아도 양해가 된다고 생각하였던 좁은 소갈머리인 나로서는 노모의 행동이 충격적이었다. 그러다가 노인들이 정말로 염치와 예의를 존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더욱이 노인에게는 청결과 자존심이라는 것이 젊은이보다도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노인에게 휴지는 종이가 아니라 청결을 닦는 자존심이었다. 이제 식당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노모에게 식당휴지나 티슈를 챙겨서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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