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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힐링처 십승지] 16. 전북 무주

'백두대간의 심장지대' 풍요로운 보배로운 땅

김정모 논설위원 kjm@kyongbuk.com 등록일 2016년10월03일 19시30분  
무주 무풍면제5경인 애플스토리테마공원이 있는 증산리.

전라북도 무주군(茂朱郡)은 옛부터 경상 전라 충청 등 삼도(三道)의 접경지대다. 한반도 남부 백두대간의 허리인 이곳 민주지산 자락에 삼도봉이 말해준다. 지금은 경상북도 김천시 및 경상남도 거창군, 서쪽은 전라북도 진안군, 남쪽은 전북 장수군, 북쪽은 충청남도 금산군 및 충청북도 영동군 등 5도 6군과 접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국토의 심장지대란 의미다. 영국의 지리학자 매킨더(Mackinder, H. J.)가 세계의 ‘심장지대(heartland)’로 유라시아 북부의 러시아 중남부 일대를 가리켰지만, 무주는 대한민국의 심장지대라고 볼 수 있다.


무주는 우리나라 십승지(十勝地) 중의 하나로 유명하다. 정감록의 「감결」이나 「남격암산수십승보길지지」에서 말한 십승지는 무주군 무풍면(茂豊面)이다. 무풍의 중앙을 남대천이 생명수로 흐르고 있다. 십승지지(十勝之地) 중에 백두대간의 덕유산과 대덕산 지역으로 거론된다. 남격암은, “무주 무풍 북쪽 동굴 옆의 음지이니 덕유산은 난리를 피하지 못할 곳이 없다”고 구체적인 장소를 기록하면서도 덕유산 전체를 몸을 보전하는 승지로써 공간적 영역을 확대했다.

백두대간의 덕유산과 삼도봉 자락에 둘러싸인 무풍은 고려시대 이래 대로에서 떨어져 있어 지리적 오지에 위치하고 있으나 큰 하천을 끼고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 지형을 갖추고 있다. 실학자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말하기를, “남사고(南師古)는 무풍을 복지(福地)라 하였다. 골 바깥쪽은 온 산에 밭이 기름져서 넉넉하게 사는 마을이 많으니, 이 점은 속리산 이북의 산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고 했다.

무풍에는 지동마을, 북리마을, 철목마을, 증산리 등 곳곳이 승지다. 12대 명산인 덕유산 자락인 대덕산을 진산으로 삼고 있다. 무풍면은 주변이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인 천혜의 승지다. 취재진이 직접 둘러본 대덕산은 부드럽고 우직한 남장부의 듬직한 모습 그대로였다.

이같은 지리적 요충지 무풍을 구한국 조정의 권신 민병석(閔丙奭, 1858~1940)이 주목했다. 민씨 정권 시절 무풍에 명성황후(민비)의 별궁(別宮)을 조성한 것이다. 무풍면 현내리다. 고종 때의 척신(戚臣)으로 벼슬이 내부대신에 올랐던 그는, 한일(韓日) 합방 이후 자작(子爵)의 작위를 받고 망국내각의 궁내대신을 지냈던 인물. 고종 27년(1890) 당시 무주부사의 협력을 받아 99칸 규모의 집을 지었다. 공사비는 군에서 상납해야 할 공물(貢物)을 대납하고 얻어진 이익금. 그 후 토지 300두락(斗落)을 부속시킨 다음 쌀 1천500(石)을 확보한 후 민비에게 상납하고 명례궁(明禮宮)으로 지었다고 한다.

구한국 어지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유사시 임금이 거동 할 수 있는 행궁(行宮)이 존재할 수 있었지만이 고을들은 민병석이 국가에 대납한 상납의 댓가로 굶주리고 야반(夜半) 도주를 하기도 했다. 조정에서 명례궁을 관리하는 관감(官監)으로 구승지(具承旨), 민병석의 종형제 민병형, 구승지(具承旨)의 양자 구일모(具日摸)를 차례로 부임시켰다. 망국의 통감부(通監府) 조정에서 명례궁의 관감을 폐지, 딸렸던 토지마저 일제의 수탈기구 금융조합 소유가 되고, 건물은 이리 저리 건물 등을 짓는데 목재로 팔려갔다.

무주는 무풍과 주계로 두 고을이었으나 조선 태종 14년 옛 무풍과 주계를 합병, 두 고을 이름의 첫자를 따 무주가 됐다. 무풍은 옛 신라 땅이고, 주계는 백제 땅이다. 무풍은 지금도 전라도 내 경상도 마을로 통한다.

무주 무풍은 인재의 고장이다. 무풍에는 황인성 전 총리의 고향이다. 김영삼 대통령이 민자당 황인성 의원을 첫 총리로 임명한 것. 무풍면 증산리 석항마을에 지금도 황 전 총리의 생가가 남아 있다.

청정지역 무주에는 반딧불이 많다. 길윤섭 무주군 문화예술담당은 “반딧불이 많은 곳이 사람이 살기에 적한 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무주반딧불축제는 함평 나비축제와 예천곤충축제의 모델이 됐다. 무주에는 옛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이었던 곳에 일제가 낸 바위 터널(나제통문)을 비롯 무주구천동 33경이 한국인들의 유명한 힐링처로 사랑받고 있다. 무주군 설천면 무설로 호롱불마을의 경우 뗏목을 타는 뱃놀이 체험은 여름엔 발 디딜 틈이 없다.

무주는 고려의 명장 최영장군의 전설이 서린 적상산이 한동안 국가의 기간 시설인 사고지로 기능했다. 가을에 붉은 여자의 치마처럼 아름다워 붉을 적(赤), 치마 상(裳)을 써서 적상산(赤裳山, 1,034m)이라 불리는 적상산은 산 암반의 색이 붉은 색을 띠며 일몰과 일출시 빛에 반사된 바위 빛깔이 오묘하다. 국가의 보물인 조선왕조실록을 300년 가까이 안전하게 지켜낸 안국(安國)의 산이다. 지금은 양수발전소 적상산 상부댐이 만들어지면서 사고지가 훼손되고 본래의 웅장한 폭포의 모습을 보기 힘들다.

적상산에 대한 진남 문화해설사의 설명이다. 명장 최영 장군에 대한 이야기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에 옛날 거란병과 왜구가 침략했을 때 근방 수십 군의 백성들이 적상산에 의지하여 보전했다. 고종 때 펴낸 적성지에도 삼도도통사 최영이 제주 왜구를 정벌하고 이 곳을 지나면서 적상산의 준험함에 감탄하여 공민왕에게 축성할 것을 건의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선인들은 견고한 암반으로 둘러싸인 준험한 적상산 산세를 보고 국가의 중요한 것을 보존할 가치가 있는 장소로 생각한 것 같다. 최영 장군이 적상산 바위를 칼로 내리쳤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도(將刀)바위 전설이 내려온다.

적상산은 한국 5대 비경 중 하나로 꼽히며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조선시대 산성 및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사고로 활용됐다. 사고(史庫)란 왕이 죽고 만들어진 실록을 보관하는 장소인데 한양을 비롯하여 중요 도시에 보관을 했다가 임진왜란 후 전주실록 만이 유일하게 남게 되어 산 속으로 옮겼다. 무주 적상산 사고는 원래 북한 묘향산에 보관되었던 실록이 북쪽의 위험과 정치적인 이유로 다른 곳을 물색했다. 그만큼 적상산의 산세가 견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자호란이 끝나고 강화도 마니산사고가 80% 이상 훼손되자 당시 가장 보존상태가 좋았던 적상산사고에 와서 조선왕조실록을 보충했다. 강화도 마니산에 보관되었던 실록은 바로 전주사고에 보관됐던 유일한 원본이었으므로 원본을 복원하는데 적상산사고의 공로가 있다. 당시 유생등 331명이 적상산에 2달가량 머물며 혹한을 견디고 작업을 했다. 일제 강점기에 적상산에 있던 실록은 황실 장서각으로 옮겨졌다가 6.25때 북한으로 반출됐다. 남북통일이 된다면 묘향산과 적상산은 한국 역사의 정체성의 뿌리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다.

무주 안국사에는 보물로 지정될 가치가 높은 천불전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옛 호국사 자리에 위치한 안국사 선원각은 왕실의 족보와 왕실에 관련된 중요한 것을 보관하는 곳으로 선원보각, 선원전이라 불린다. 인조 때 왕실의 족보를 비롯한 중요한 것을 보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인정되어 1641년 사각 옆에다 건립했다. 이로써 선원각과 실록각(사각)이 완전하게 건립돼 무주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가 됐다. 이 후 일제 강점기에는 적상산사고에 있던 책들이 왕실 규장각으로 옮겨졌으며 사고는 폐지됐다. 현재 안국사에 있는 천불전 건물은 전국에 있는 사고 건물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선원각 건물로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으므로 보존할 가치가 매우 크다다. 우리 정부가 하루 빨리 보물로 지정하길 기대한다.

무주의 옛 고을 무풍은 지명 풍(豊)에서 풍요의 고장임을 직감한다. 농경시대에는 곡식의 종자는 생명이나 다름없다. 무풍은 곡식의 종자를 구하는 우리나라 삼풍(三豊) 중 하나다. 실제로 요즈음은 품질 높은 사과를 생산해내면서 고소득 마을로 뜨고 있다. 무주군에서 취재진이 만나본 주민들은 “황정수 군수가 농업과 관광을 위해 무척 노력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있다.

또 하나의 옛 고을 주계(朱溪)의 붉을 주(朱)는 무주읍을 상징하는 색이다. 무주읍을 관통하는 하천이 옛날 적천(赤川)이고 무주읍을 지키는 산 적상산이 모두 붉다. 무주에는 붉은 색을 띄는 ‘산머루와인’ 맛이 일품으로 소문나 있다.

풍요롭고 붉은 땅 무주 고을은 21세기에 각광받고 있는 보배로운 땅이다.

무풍8경 중 제1경 사선암은 옛 신라 화랑들이 수련했다고 전해온다
▲ 무풍에 인재를 낳게하는 대덕산 아래.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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