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마루에는 사진 한 장,
햇빛이 달라붙어 게걸스럽게
여자의 얼굴을 뜯어먹고 있었다
입가의 미소까지 다 핥고도
아직 배가 차지 않는지
깨진 액자의 유리 틈까지 쪽쪽 빨아댔다


불꽃이 만개했던 그날 이후
흉흉한 소문들만 수시로 태어나던 집이었다
그을음이 그려놓고 간 벽화 속을
불타 죽은 고양이가 서성인다거나
손톱 빠진 아이들이 나타나서
검은 문짝을 밤새 긁어댄다거나


유령처럼 희미해진 사진 속 여자는
고양이에게, 아이들에게
어떤 저녁을 떠먹여주려던 걸까
명줄처럼 잘린 가스배관에서는
무거운 흐느낌이 흘러나온다고도 했다


표정이 다 증발하고 없어서
물끄러미 바라보면 흘려버릴 것 같은
그 얼굴, 남은 윤곽까지 긁어먹으며
햇빛은 입술이 조금 검어졌다





감상) 가을이면 폐가 같은 집 한 채 내 마음 속으로 떠내려 오지 나는 오랫동안 그 집 앞을 서성이지. 그 집에 담긴 추억 같은 것들을 찾아보려고 이맛살을 찌푸리지. 그러나 폐가는 아무 것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지 나는 그 집을 버리지도 못하고 부수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가을을 보내지.(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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