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더(order) 오더’ 국회의장의 질서를 지키라는 명령 두 마디에 여야 설전으로 소란스러웠던 의사당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진다. 마치 떠들던 초등학생들이 선생님의 엄한 한두 마디에 정신을 차린듯한 모습이다. 이 모습은 영국 의회서 흔히 볼 수 있는 전경이다. 의사당 질서유지를 위해 의장이 일어서면 총리도 야당 당수도 일반의원들도 모두 입을 다물고 숙연히 자리에 앉아야 한다. 간혹 의장의 의사진행에 불만이 있어 이의를 제기할 때도 “절대로 각하를 거역하는 것이 아니고…”라는 단서를 먼저 붙인다. 의장의 태산 같은 권위는 의장의 신성불가침한 엄정 중립에서 비롯됐다.

‘웨스터민스터궁의 심판관’으로 불리는 의장은 어느 정당 출신을 막론하고 당적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정치모임에도 일절 참여하지 않는다. 표결에서 가부(可否) 동수인 경우 의례히 ‘부’표를 던진다. 의장의 ‘부’표는 소수파에 동조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 의회가 세계 의회 민주주의의 모범이 된 것은 이 같은 의장의 엄정 중립으로 확립된 의장의 권위 때문이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이 의장 재임 시절 “이만섭 오빠 사랑해요”, “만섭이 오빠 파이팅” 등 국민의 절대적 성원을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민주당과 자민련이 국회 운영위서 한나라당의 강력한 저지에도 불구, 국회교섭단체 등록요건을 20석서 10석으로 낮추는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로 통과시키자 “날치기는 절대 안 된다”며 본회의 직권상정을 거부한 이 의장에게 국민의 칭찬이 쏟아졌던 것이다.

국회의장은 권력서열 2위 자리다. 차량 번호도 대통령 관용차량번호 ‘서울 1 가 1001’에 이어 ‘서울 1 가 1002’다. 휘하에 장관급 1명과 차관급 4명을 거느린다. 특히 여소야대 상황에선 국회의장이 갖는 권한의 의미는 각별하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국회의장이 국민의 경시 대상이 된 것은 대부분 자당의 꼭두각시 역할을 해 온 탓이다. ‘맨입’ 발언으로 ‘야당 하수인’ 비난을 받고 있는 정세균 국회의장의 편파적 국회운영이 의장의 중립성을 훼손, 의장의 권위마저 만신창이가 됐다. 정 의장은 영국 국회의장의 ‘중립’부터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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