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섭 대구중부경찰서 민원실장 경감
‘갑(甲)질’이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甲)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乙)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갑질에서 더 나아가 ‘슈퍼 갑질’, ‘울트라 갑질’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땅콩 회항 사건, 입주민들의 경비원 폭행 등으로 인한 자살, 대기업 임원의 운전기사 폭행, 직장상사의 욕설·폭언으로 인한 수치심으로 부하직원의 자살 등 얼굴이 붉어지는 언론보도가 수십 건에 이르렀고, 이는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갑질 문화’가 깊숙이 파고들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하루에도 수많은 갑질이 이뤄짐에도 불구하고 갑질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각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뒤늦게 인식했을지라도 내가 그보다 더 높은 지위인데 그렇게 행동하는 게 뭐가 잘못됐느냐 또는 억울하면 그 사람이 나처럼 지위가 높든가 등으로 피해자의 입장은 헤아리지 않은 채 자신의 입장에서 정당화하기 일쑤다.

사람이 사는 곳에 다툼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다툼이 아니라 일방의 횡포, 즉 갑질에 불과하기에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배려와 존중을 통한 인권(人權)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다.

한국사회의 갑질 문화는 부의 양극화, 치열한 경쟁사회, 금전 만능주의 등의 부작용으로 잉태된 갑질의 폐해가 개선되지 않고서는 미래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갑질 문화를 없애고 인권존중 사회를 구현할 것인가? 상류층 또는 권한이 있는 사람의 각성이 해답이다.

먼저, 낮은 위치에서 겸손한 마음을 갖고 포용력을 키우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지식보다는 큰 그릇의 인품이 더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직위나 계급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의 직위나 계급을 본인과 같다고 보면 된다. 영원한 직위나 계급은 없다. 또한 그것은 업무에서의 지위이지 인품의 지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직위가 무슨 사적인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러한 마음을 거둬들일 때 진정한 인품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평생 누구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고를 잊지 않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농부가 있어서 농사를 짓지 않아도 식량 걱정 없이 살 수 있고, 제조업에 근무하는 많은 사람의 덕분으로 생필품을 우리가 만들지 않고서도 사용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각 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우리는 일상생활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시각을 늘 갖고 있으면 이런 문제들은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 모두 성숙한 인품을 키워 갑질사회를 없애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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